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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16.06.28 20:02

곡해된 율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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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오랜 교회의 역사를 통해 우리 기독교의 여러 용어들에 그의 교묘히 변질된 의미를 주입시켜 왔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 마귀의 도구로 사용된 적지 않은 분별력 없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이러한 변질된 용어들이 많이 쓰여지고 전해져 왔다.

바로 이 "율법주의" 라는 용어가 최근에 들어와서 그렇게 일부 기독교인들에 의해 곡해되어 쓰여지고 있는 용어들 중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율법주의" (legalism) 라는 용어가 아직도 여러 표준 사전들에서 다음과 같이 비교적 정확하게 정의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웹스터 신세계 사전 (Webster's New World Dictionary) - "신학에서 선행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설"

 

리더즈 다이제스트 백과사전 (Reader's Digest Great Encyclopedic Dictionary) - "신학에서 은혜에 의하지 않고 선행이나 엄격한 종교적 규약의 준수를 통한 구원을 주장하는 설"

 

위에 인용된 일반적 사전들의 정의를 보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율법주의적 구원론에는 그리스도의 역사가 존재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음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율법주의에 대해 예언의 신은 위의 정의들보다 더 이해하기 쉽고 명확하게 그것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율법주의적 신앙에 따라 살려는 시도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계명의 요구를 만족시키려는 노력하에 속박된 노예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SDA 성경주석, 6 1077 페이지).

 

우리가 여기서 주지하고 이해해야 할 구절은 바로 "우리 자신의 힘으로" 라는 구절인데, 이것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존재가 임재하지 않는 율법주의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로마서 7:25에서도 한 때 율법주의자였던 바울이 그리스도의 도움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외적/내적 죄악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율법주의자의 좌절감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로마서 7:25)

 

내 자신이”, “혼자서”, “내 자력으로”, “그리스도의 도움없이 인간의 힘으로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려는 노력 - 바로 이것이 율법주의의 올바른 정의인 것이다. 오랫동안 신학 사전들에서는 이렇게 올바른 율법주의의 정의를 사용해 오고 있었는데, 이러한 정의를 접하면서 우리는 몇가지 분명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로, 율법주의란 그 어떤 한 계명과 관례에만 적용되고 다른 계명과 관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도움없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것이 율법주의라면,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는 사람을 율법주의자로 취급하면서 일요일에 그와 똑 같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율법주의자가 아니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둘째로, 율법주의는 행위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한마디로 태도와 동기와 직관한다. 자기 자신의 힘에 의존해서 자기 혀를 다스리려는 사람은 율법주의자 이지만, 이 똑 같은 말조심을 그리스도의 도움에만 의존해 성사시키는 신자는 율법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이 둘에 있는 차이는 그들의 태도이지 밖으로 들어나는 행위가 아님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갈라디아서 4:22-23에 있는 바울의 비유에서 너무나 잘 나타나 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갈라디아 4:22-23)

 

이 성경 구절에서 보듯이, 아브라함이 하가와 가진 관계의 결과와 사라와 가진 관계의 결과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똑 같이 아들들이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행위가 아닌 그 행위를 있게 한 아브라함의 태도와 동기에 있었다. 아브라함의 한 행위은 자기 자신의 구상에 의지하여 성사시킨 행위, 즉 율법주의적 행위였으며, 그의 또 다른 행위는 하나님의 약속에 의지하여 믿음으로 이룬 행위였던 것이다. 이처럼 율법주의란 행위에 있지 않고 그 행위를 있게 한 태도나 동기에 있다. 두명의 다른 사람에 의해 행해진 동일한 행위가 그 행위를 한 그들의 태도와 동기에 따라 율법주의적일 수도 있고 믿음적일 수도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두번에 걸쳐 행한 동일한 행위도 그 때 그 사람의 태도와 동기에 따라 그 행위가 율법주의적일 수도 있고 믿음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다른 사람의 행위를 그리스도의 존재가 없는 율법주의적인 것으로 함부로 매도하는 일은 매우 위험하고 올바르지 못한 행습이다. 율법주의는 사람의 태도및 동기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또 그 태도와 동기는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데, 우리 인간의 안목은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동기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때, 어느 한 사람이 (마치 자기에게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읽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듯이) 다른 어떤 형제를 율법주의자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분명해 지지 않는가! 이러한 무서운 행습들을 생각없이 함부로 하고 있는 이들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이사야 14:14) 고 한 마귀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지나 않는지 조용히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읽고 판단하는데도 실수를 많이 하는 한심한 존재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는 가능성은 바로 우리 자신의 마음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이 약점과 관련된 무의식적이고 비의도적인 율법주의에 있다. 만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도움없이도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우리가 준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질문한다면 그 누구도 분명히 "아니오" 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자명한 진리적인 교리를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그 진리를 현실적으로 실천하고 있지 않을 수 있다. 그리스도와 매순간 동행하는 개인적 관계에 부주의함으로 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을 상실하여 그리스도인 삶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부주의함에서 오는 율법주의에 대해 우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마음을 애써 지키며 우리의 동기를 주의깊게 분석하여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분리되지 않도록 단호한 마음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요즈음 자주 언급되고 있는 율법주의의 의미는 이러한 부주의함에서 유인하는 율법주의가 아니다. 지금 재림 신앙의 기조적인 어떤 교리들과 초기 우리 믿음의 선구자들의 신앙을 향해 공격적으로 던져지는 "율법주의"의 개념은 도덕률 철폐주의 (antinomianism)를 방불케하는 현대 칼빈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들이 지니고 있는 율법주의의 개념은 정통적인 기독교의 개념 (, "그리스도의 도움없이 인간의 힘에 의존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려는 자세") 가 아닌, 그 어떤 동기에서 유래하던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그 자체를 율법주의로 규정하는 곡해된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죄를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설상 그리스도의 능력의 도움이 있더라도 절대로 불가능하기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율법주의가 되고 만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더럽혀지지 않은 삶을 살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을 율법주의자로 정죄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지하여 그리스도를 닮으려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율법주의적인 것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높은 표준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주의자가 되고 저질적인 생활을 사는 타락된 기독교인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논조이지 않은가? 이러한 논조는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안식일을 조금씩 범한다" 혹은 "율법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간음도 조금씩 하련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방식이 가능해 지도록 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요한 일서 2:6) .


우리 이러한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지 말자. 우리에겐 하나님의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보내신 한 신실한 대언자를 통해 준 많은 권면들이 있다. 이러한 타락된 칼빈주의의 어설픈 논조들을 너무나 명백하게 제거하는 훌륭한 거짓말 탐지기 말이다. 다음의 몇가지가 그 대표적인 권면의 말씀들이 되겠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려고 애쓰는 모든 사람에게 탁월한 능력 곧 하늘의 보화가 주어져서 그들로 타락한 일이 전혀 없는 천사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할 것이다.” (실물 교훈, 163)

비축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제공되어 있다. 우리가 냉랭하고 깜깜한 불신의 동굴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 그렇게 있으면 의의 태양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우리가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믿음을 공언하는 것 이상을 요구한다. 하나님께서 기꺼이 주시는 은혜을 의지해 죄를 극복하려는 간절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리뷰와 헤랄드, 3, 14)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우리를 위해 비축해 두셨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행사하여 그 도움을 요청하는 이들은 그 능력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인간의 노력과 협력할 것이다. 형제들이여, 하늘의 문이 열려있어 하나님의 영광이 어려움과 혼란 중에 하늘을 쳐다보는 모든 영혼들에게 비추어 질 것이다.” (영문 시조, 2 307)

 

재림신앙의 정수는 율법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우리는 오랜 기간의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탐구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그리고 이 재림 신앙의 선구자들의 신앙과 그들의 경건한 삶이 결코 율법주의적이지 않음을 배웠다. 그들이 이룬 신앙의 열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들이 보여준 신앙의 능력은 메마른 율법주의에서 나올 수 없는 그러한 능력이었다.

그와 반대로 메마른 율법주의의 표상은 지금 이 선구자들을 율법주의자로 애써 묘사하고 있는 맥 빠지고 나약한 신앙을 가진 일부 현대 재림 교회 학자들이나 목사 및 교인들에게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과 그의 고명한 구원의 표준을 우리 생각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우상을 만들고 그것에 절하며 구원을 성취하고자 하는, 죄의 정의를 바꾸며 구원의 조건을 없애는 시도들이 바로 엄격한 의미에서 율법주의인 것이다. 죄인들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자 하나님의 방법과 상관없는 자기 맘대로의 구원 방법을 만들고 있는 행습들 말이다. 그것이 바로 자기 힘으로 자신들의 타락된 심성과 욕구의 충족을 위해 만들어 놓은 우상숭배적인 구원을 성취하려는 율법주의다.

율법주의는 자신의 선행과 공로로 통해서 의를 이루는 것을 말하기도 하지만 율법을 목적으로 하여 율법적 의와 업적을 쌓고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를 수단화 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율법주의다. 변형된 갈라디안주의적 율법주의적 형태라고 할 수있다..그리스도는 율법의 의를 이루기 수단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며  전부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완전하게 하나가 될 때 자연스럽게 나도 알지못하게 그리스도의 생명적 사랑이 흘러나오겠지요..그러나 그것도 내 구원의 의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가 그 주체이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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