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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인가?

재림교인으로서 개별적으로, 개인적으로 대답해야 될 한가지 엄숙한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나는 과연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인가?" 이다. 이 질문은 우리가 대답하기에 막연하게 들리고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우리 모두는 엄숙한 마음을 가지고 이 질문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답변을 주어야한다. 그러나 막상 우리가 입을 벌려서 대답을 하려고 할 때에는 분명치 않은 곤란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이유는 현재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뚜렷하고 명확한 신조와 기준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불확실한 교리와 너무나 다양한 가르침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서로 다른 다양함 속에서 연합할 수 있으며, 해야만 한다" 라고 한다. 이 말은 우리의 귀에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하게 확인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는 다양한 인격과 서로 다른 개성을 피차에 존중하며 연합할 수는 있지만 다양한 가르침과 서로 다른 신조에 대한 피차의 주의 깊은 확인과 교정없이 연합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해서 정확한 답변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신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확인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 또한 이 기준은 우리의 재림 교회의 존재 이유와 가치와 목적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안심하고 신뢰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성경에 나타난 예언의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 세워졌을 때 우리의 선구자들과 선지자가 함께 모여서 했던 깊은 성경 연구와 기도와 계시를 통해서 굳게 다져졌고 확립되었던 신조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그들의 사상과 신앙은 요한 계시록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는 남은 무리 또는 남은 교회의 특성을 순수하게 유지하며 고수하고 있었으며 예언의 신을 통해서 그 당시의 모든 세속적이고 이단적인 가르침과 풍습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보호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변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이 현재 믿고 있는 신조와 사상을 재림교회가 태동할 당시의 역사적인 재림신앙과 대조해보고 비교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하여 자신의 신앙과 사상이 역사적인 재림신앙과 일치하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입증할 수 있는 자들만이 비로소 자신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구자들이 고수했고 확립시켰던 역사적인 재림신앙이란 어떤 것인가? 다음과 같은 세가지의 도전적인 질문들을 통해서 재림신앙의 실체를 알아보도록 하자:


1. 우리는 예언의 신을 "예언의 신"으로 믿고 신뢰하고 있는가?

요즈음 우리는 교회 안의 평신도들과 지도자들 사이에서 예언의 신의 권위에 대한 문제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주는 교훈과 역사와 예언에 관한 예언의 신의 해석이 자신의 견해와 일치할 때만 예언의 신을 "예언의 신"으로 대접한다. 그리고 만일 성경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예언의 신과 자신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예언의 신을 100년전에 있었던 한 여인의 사견으로 돌려버리게 되는데 그때마다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은 "예언의 신을 성경보다 위에 놓아서는 안되지"이다. 예언의 신을 성경보다 위에 놓아서도 안되지만 자신의 견해를 예언의 신보다 높은 곳에 놓아서도 안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영감성과 예언의 신의 영감성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성경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과 예언의 신 속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는 말인가? 만일 그것이 하나님의 영이면 다 같은 하나님의 영이시다. 80%의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이 있을 수 없다. 99%의 하나님의 영이라는 말도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은 항상 다 같은 하나님의 영일 뿐이다. 그대들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의심과 불만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조심하라. "너무 예언의 신만을 읽지 마세요. 이것 저것 골고루 균형있게 읽으세요. " "예언의 신은 백년전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성경을 주로 읽고 예언의 신은 이해가 안되는 점만 찾아가며 읽으세요."


예언의 신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지막 세대를 위해서 주신 예언의 선물이다. 예언의 신이 존재하지 않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상상할 수 있을까? 그대가 만일 예언의 신을 믿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 아니다. 비록 그대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교회에 매 안식일마다 출석하고 있을지라도....



"사단의 최후의 기만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을 무력하게 만드는 바로 그러한 성질의 것이 될 것이다 ... 증언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은 사단에게 속한 정신이다. 증언들에 대한 교회의 신앙을 동요시키는 것이 사단의 책략이 될 것인데 그 이유는 이렇다. 만일 하나님의 영께서 주시는 경고와 견책과 권고들을 귀담아 듣는다면 사단은 자기의 기만술을 펼 수 있는 길을 마련할 수 없으며 자기의 기만 속에 영혼들을 묶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서신 40. 1980년



2. 우리는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믿는가?


누가 십자가에 매달리신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으면서 죄를 고집하며 더러운 생각을 품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 나를 위하여 어떤 희생과 곤욕을 치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영혼마다 죄를 버리게 될 것이다. 죄에 대한 완전한 승리는 우리를 위해서 완전한 대속의 제물이 되어 주신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명상함으로써 시작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지킬 수도 없고 또한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면, 우리는 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경제적인, 사회적인 희생마저도 불사하는가? 4째계명은 꼭 지켜야하며 10째계명은 가끔 지키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


주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그대는 어떤 죄를 숨겨 가지고 하늘 왕국에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율법을 몇 퍼센트쯤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계획하는가? 십계명 중에서 어떤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죄를 버리자. 만일 십자가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포기하고 유혹을 떨쳐버리게 하지 못한다면 그 십자가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십자가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아무런 부흥과 개혁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 십자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아무런 능력없는 나무 우상이 아닌가? 다니엘은 바벨론의 압력과 유혹을 극복하기 위해서 "뜻을 정하였"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거룩한 생애를 살기로 선택하였다 (단 1:8). 우리도 그들처럼 뜻을 정하고 거룩한 생애를 살기로 선택하면 그들처럼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거룩한 선택과 결심을 기다리면서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하늘의 거룩한 존재들이 지금 우리 곁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단지 십계명의 명백한 요구들을 순종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려고 애쓸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 3:22.


십자가를 바라보자. 우리가 어찌 그분의 손에 또 다른 못을 박을 수 있는가! 우리가 어찌 죄를 고집할 수 있는가! 승리를 내일로 미루지 말자. 오늘의 승리로 우리 대장 예수께 영광을 돌리자.


"우리가 영생을 얻는 길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기 전인 에덴 동산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똑 같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에 완전히 순종하는 일, 곧 완전한 의를 통하여 영생을 얻는다. 영생은 이외의 다른 길로 얻어 질 수 없다." 정로의 계단, 141.



3. 우리는 세속과 세상을 우리의 원수로 정하였는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 2:15,16.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눅 13:24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
두 길은 서로 구별되고 분리되어 있으며 반대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한 길은 영생으로, 다른 길은 영원한 멸망으로 인도한다. 한 길은 넓고 평탄하며, 다른 길은 좁고 험하다. 그 길을 여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품성과 생애와 의복과 대화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낸다. 넓은 길의 사람들은 자신의 용모와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이끌기에 충분한 의복과 멋진 자동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으며, 좁은 길의 사람들은 여행 끝에 가질 기쁨과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비록 그 길이 험하여 힘들지라도 먼저 자신들의 앞을 걸어가신 한 분의 발자취를 보고 위로와 기쁨을 얻는다.



하나님의 종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건강을 잃어버리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그들의 생애를 바쳤다. 그들은 지나친 정신력의 소모, 끊임없는 걱정, 고생과 가난으로 인해서 매우 지쳐있다. 그러나 그들 주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은 아무런 짐도 지지 않았고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고난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며 고통 중에 발견하는 하나님의 손을 모른다. 그들은 다만 그들의 영혼에 아무런 유익도 가져오지 않는 안일한 신앙을 즐기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서 스스로 답해 보라. 우리의 관심이 하늘에 있는가? 또는 세상에 있는가? 우리의 의복은 그리스도의 용사임을 표시하고 있는가?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르는 음식들은 항상 건강에 유익한 것들이며 또한 단순함과 소박함을 유지하고 있는가? 우리의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의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열정과 포부를 소유하고 있는가? 가족의 진정한 행복과 구원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계획하며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 세상을 버리고 하늘을 택하자. 세상이 가지고 있는 세속과 교회 안에 잠입하여 들어온 세속적인 정신과 생활 사이에 약간의 외형상 차이가 있다고 해서 우리가 안심하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도달해야 할 분명한 표준이 있지 않은가? 지금은 우리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복음을 들을 뿐만 아니라 복음대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기를 고대하며 기다리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들고 서 있는 깃발의 색깔을 뚜렷하게 할 때이다.


"우리가 주님께서 달하기를 원하시는 표준에 이를 때 세상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괴상하고 고집스러우며 옹졸한 극단주의자들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스도인 교육, 289.


세속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딘가에 줄을 긋고 그 안에 서 있는 것이다. 우리의 표준을 조금씩 갉아먹는 일들은 우리가 힘을 모아 그것에 대해서 저항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은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으로서 서 있는 데에 있다. 우리는 이 세대의 타락한 관습과 유행에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오히려 도덕적으로 독립을 유지해야 하며 이 세대의 부패와 우상 숭배적인 행위들에 대해서 아무런 타협도 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증언 5권, 영문 78.



결론의 글

우리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을 의미한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인은 아담 때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뚜렷한 선 위에서 생애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중의 일부를 이룬다. 그러므로 재림교인이 되는 길과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실제에 있어서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진정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증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우리가 그분의 제자가 된 사실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다음의 영감의 말씀이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없이도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원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친구들의 눈에 올바르게 보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선한 사업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어느 편에 속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누가 우리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우리가 누구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가 누구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는가? 누가 우리의 가장 뜨거운 애정과 최선의 사업을 소유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우리의 가장 부드러운 생각은 그분에 대한 것이 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우리의 존재 자체도 그분의 것이 되며, 그분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기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길을 따르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자 열망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전에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될 것이며 그들이 전에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될 것이다. 교만한 자들은 겸손해지고 어리석은 자들은 지혜로워 진다. 술을 마시던 자들은 더 이상 마시지 않게 되고 불순한 자들은 순결해 진다. 세상의 허영을 좋아하던 자들은 그것들을 버리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의복으로 관심을 끌고자 해서는 안될 것이다....


참 회개는 우리를 변화시켜 준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우리가 훔친 것을 돌려주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의 동료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그분의 용서와 은혜를 받아들일 때 우리의 마음에 사랑이 싹트게 된다. 드디어 우리가 해야 될 의무가 어렵게 보이지 않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기를 바라시는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즐거움이 된다. 전에 어두웠던 길이 의의 태양에 의해서 점점 밝아지게 된다." 정로의 계단, 134.


마태복음은 우리에게 "좁은 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 길은 실제에 있어서 타락한 육신을 이끌고 따라가기에는 너무 가파르고 좁다. 그러나 일단 믿음으로 그 길에 들어섰을 때 우리의 매 발걸음 마다 열려 나가는 넓고 평탄한 길을 기억하도록 하자! 수 많은 사람들이 좁고 협착하다고 불평하며 들어오지 않는 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보람된 수고와 영광의 길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생애는 즐거움과 유쾌함으로 "넓은 길"을 춤추며 뛰어가는 것이다. 그 길은 움추리거나, 게으름을 피우며 가는 길도 아니며, 남의 눈치를 보면서 할 수 없이 끌려가는 그러한 길도 아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정열을 가지고 달려가자. 가끔씩 우리의 길에 나오는 유혹과 시험쯤은 걷어차 버리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접혀있던 날개를 펴자. 높은 곳에 올라가 우리에게 필요한 경험은 무엇이며, 우리를 필요로 하는 영혼들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자. 라오디게아의 포근하고 안락한 이불을 걷어치우고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행군하자! 이런 사람이야말로 세상이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가? 바로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늘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 교회가 필요로 하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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