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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020.02.27 10:54

최 씨 vs 강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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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씨 vs 강 씨

                  

                                                                                                                                                                                                                                 

                                                                                      최용현 (수필가)

                                 

   오늘도 출근길에 담배 한 갑을 샀다.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따갑고 가끔 목구멍에서 누런 가래 덩어리가 나와서 이제 정말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출근길에 한 갑 사서 사무실에서 다 피우고, 퇴근길에 또 한 갑 사서 집에서 다 피우는 오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루 세 갑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었다. 10년쯤 전, ‘국세라는 월간지에 삼국지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었는데, 이름이 꽤 알려진 출판사 사장한테서 전화가 왔다. 연재하고 있는 삼국지 원고를 묶어서 책으로 내자는 것이었다. 단행본을 내려면 최소한 60편은 되어야 하는데, 그때는 채 20편도 쓰지 않은 상태였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책에서 나오는 인세가 월급보다 더 많을 거라는 그 사장의 말에, 나는 다니던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내고 집에 눌러 앉았다. 한 열흘씩 수염도 깎지 않고 처음 장만한 컴퓨터 앞에 앉아 밤낮없이 삼국지와 씨름했고, 그렇게 해서 속성으로 출판한 삼국지 인물 소프트15,000부나 팔렸고 인세도 꽤 많이 받았었다.

   삼국지와 씨름하던 그 무렵, 담배 한 보루를 사면 사흘 만에 동이 났으니 하루 세 갑 이상을 피운 셈이다. 담배를 물고 자판을 두드리다보면 타들어가던 담뱃재가 길게 늘어지다가 자판 위에 뚝 떨어지곤 했다. 그러면 옆으로 훅- 불었고 그러다보니 방바닥에 떨어진 재 때문에 발바닥이 늘 새카맸다.

   내가 처음 담배를 피운 것은 대학입학 시험장에서였다. 함께 간 친구가 건네준 담배에 불을 붙여 첫 모금을 깊숙이 빨아들였을 때, 갑자기 술에 취한 듯 주변 건물들이 머리 위로 빙빙 도는 것 같은 느낌이 온 몸에 퍼져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다음부터는 느낌의 강도가 점점 덜했지만 중독성은 피울수록 더 심해진 것 같다.

   군대생활 할 때는 이틀에 한 갑씩 화랑 담배가 나왔는데, 늘 나오는 날 다 피웠고 다음날은 담배가 없어서 쩔쩔 맸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전우들한테 얻어서 피기도 했고, 장교 식당이나 상황실 주위를 살피다가 재떨이에 있는 꽁초를 주워서 피기도 했다. 휴가 갔던 고참이 사들고 온 사제담배를 몰래 꺼내 피웠다가 들켜서 직사하게 얻어맞은 적도 있다.

   술은 체질적으로 잘 맞지 않았지만 담배는 잘 맞았던 것 같다. 직장생활 할 때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피웠지만, 심심할 때도 피웠고, 아무 이유 없이도 피웠다. 집에서도 아내와 애들 눈치 안보고 피웠다. 우리 집에는 안방과 거실, 베란다에 모두 재떨이가 있다. 그렇게 담배와 동고동락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

   12월 중순 어느 날, 6층에 있는 전기재료학회 강 국장이 우리 사무실로 내려왔다. 우리 사무실에 오면 항상 담배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담배가 떨어지면 오곤 하는데, 연배가 비슷해서 친구처럼 지내면서 학회 일도 의논하고 개인적인 얘기를 하기도 한다. 가끔 최 씨가 세다, 강 씨가 세다따위의 유치한 문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강 국장은 하루에 담배 반 갑을 피우는데, 사무실에서만 피우고 집에서는 피우지 않는단다. 퇴근할 때는 양치질을 하고 가기 때문에 부인은 담배를 끊은 줄 알고 있단다. 그런데 며칠 전 술자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무심코 집에 들어갔다가 들키는 바람에 요즘에는 매일 부인한테 온몸을 수색당하고 있단다.

   그가 11일부터 담배를 함께 끊자고 제의했다. 금연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다. 신문광고에 나오는 금연보조제는 거의 다 써보았다. 작년 연말에는 한 달 안에 담배를 끊을 수 있다는 금연초를 3개월 할부로 구입했었다. 한 달 동안 피우라는 금연초를 일주일 만에 다 피우고 두 달 동안 할부금을 내면서 다시 담배를 사서 피웠으니.

   며칠 전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아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이 내 교복에서 담배냄새가 난다고 해.’ 하는 얘기를 듣고 이제 정말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마음뿐 도무지 끊을 자신이 없었다. 나는 하루 반 갑 피우는 당신과 하루 두 갑 피우는 내가 같이 끊는 내기를 하면 내가 너무 불리하잖아.’ 하면서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강 국장이 어째 최 씨가 강 씨보다 약하구먼. ‘돌 최 씨인가 보네?’ 하면서 약을 올렸다. 나는 돌 최 씨란 말에 울컥해서 좋다! 해보자.’ 하고 승낙을 했다. 11일 이후에 한 개비라도 피우면 그 성 씨가 지는 거고, 아울러 돌 최 씨혹은 돌 강 씨임을 인정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퇴근길에 목캔디 두 통을 사서 집과 사무실에 한 통씩 두고 호주머니에도 몇 개 넣었다.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목캔디를 입에 넣었다. 하루 두 갑 피던 것을 며칠 만에 한 갑으로 줄였고, 다시 며칠 만에 반 갑으로 줄였다. 집에서는 아예 안 피웠다. 12월 마지막 날은 오전 한 개비, 오후 한 개비로 하루를 보냈다. 이제 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11일이 되었다. 쉬는 날이라 집에서 참고 견디며 하루를 버텼다. 다음 날도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그런데 사흘째인가 화장실에 갔다가 재떨이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꽁초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서 그 꽁초를 입에 물고 말았다. , 몰래 피는 꽁초의 그 황홀한 맛이란.

   그때부터, 화장실로 가는 발자국 소리만 들리면 복도로 나가 아는 사람이건 모르는 사람이건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루에 몇 개비씩 얻어 피우는 바람에 작심삼일 만에 금연은 허무하게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1월 중순에 만난 강 국장은 11일부터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금연할 자신이 있다고 했다.

   나는 강 국장의 추궁에 하루에 몇 개비씩 얻어 피웠다고 솔직하게 시인하고 그날 점심을 샀다. 그리고 다가오는 음력 11일에 끊겠다고 했다. 그때도 끊지 못하면 돌 최 씨임을 인정하겠다고 했다. 내가 잘못해서 듣는 욕은 감수하겠지만, 내 잘못 때문에 조상들을 욕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웃으며 한 번만 봐준다.’면서 동의를 해주었다.

   그해 음력 11일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나는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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