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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전해지는 재림기별


1958년 봄, 우여곡절 끝에 형의 손에 이끌려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유희>를 좋아하는 나에게 흔치 않은 두 가지 기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하나는 수영장, 다른 하나는 미니 골프장, 그런데 수영복과 골프공이 없는 나에게는 처음에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습니다. 참으로 나의 신세가 한심했지요. 방과 후에 몇몇이 남아서 민망한 고추들을 다 내어놓고 알 몸으로 수영을 하다가 야단 맞고 쫓겨나기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루는 먼 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골프공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말하자면 보물을 발견한 듯한 그런 횡재였습니다. 그때 부터 나는 거의 매일 점심시간에 반 아이들과 미니 골프를 했지요. 이것을 빌미로 골프는 지금까지 나의 취미가 되었고 건강 유지의 주요 수단이 되어왔습니다. 


조기 은퇴를 하고나니 시간은 많은데 사치가 아닌가 하여 망설이다가 아이들의 강권에 떠밀려 골프를 시작했습니다. 시에서 주최하는 골프 리그에도 가입하고 개인 클럽에도 들어가 열심히 쳤지요. 어느 정도 골프 자세의 균형이 잡히자, 드디어 골프장 주변의 멋진 자연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햇빛은 나무 잎새로 반짝이며', 신선한 공기, 따스한 햇볕,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한 푸른 경치가 마음에 스며들고, 맑은 물이 가득한 연못들이 군데군데 파란 잔디에 포근히 둘러싸여 평화롭게 누워있으며, 그 안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유희>하면서 즐겁게 따라 다니는 앙징스런 자라들과, 오리, 거위, 왜가리들의 여유스런 동작과 비상은, 시편의 잔잔한 물가와 푸른 초장을 연상하기에 충분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오랜 시간 훈풍을 얼굴에 받으며, 천천히 푸른 잔디 위를 걷는 기쁨은 골프 이상의 큰 즐거움입니다. 소망의 씨앗들이 바람결에 수줍게 피어나는 봄날의 화사한 정취와, 내면에서 피어나는 그리움의 불덩이가 온 숲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 경치의 장려함은 우리의 영혼을 시원의 천연색으로 물들게합니다. 순간들이 모여 삶을 이루듯이, 이러한 작은 전율들이 모여, 생은 푸른 초원 위에서 시간과 함께 영글어가지요. 


생의 가치와 목적같은, 진지하고 심각한 근본 물음은, 창조주의 계시와 성경을 떠나서는, 과학의 맹목과 철학적 혼돈의 늪에 우리를 빠뜨려 결국엔 익사 시키고 맙니다. 성경 위에 세워진 건국이념과 창조에 근거한 보편적 가치 및 복음 위에 얹혀있는 인류애가 그래서 더욱더 소중한 것입니다. 골프는 나에게 이런 깨달음을 강화해준 체험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아울러 그것은 마음을 비워내는 작업의 연속이며, 인생수양과 성찰의 믿을 만한 방편이 되기도했지요.


언 땅을 녹이고, 흙더미를 밀치면서 봄은 깨금발 들고 돋아납니다. 해마다 봄 부터 가을 까지 5 개월 간, 매 주 수요일에 두 명씩 한 편이되어 40 여명의 골퍼들이 매치 플레이로 조촐한 상금과 두둑한 상품을 걸고 팽팽한 경쟁을 합니다. 내가 속해있는 30년 전통의 오래된 골프 클럽입니다. 50세 이상의 백인들로 구성된 회원들은 교사,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현역들과 은퇴자들입니다. 그 중 유일한 유색인이 재림교인인 한국 사람인데, 믿기지 않겠지만 그가 12년째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유희인(homo ludens)으로서 <유희>를 유난히 좋아하고, 물려받은 느슨하고 유연한 둘째로서의 성격과, 전도의 기회로 삼으려는 기특한 열심을 보시고 주께서 이 사명을 저에게 맡기신 듯합니다. 물론 나의 편에서도 많은 시간의 봉사와 얼마의 부담이 있긴하지만, 투자한 만큼 정말 많은 것을 여기서 배웁니다. 


중산층 미국시민의 드높은 긍지와 숭고한 기독교 정신은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하지만, 더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의 순진한 겸손과, 배려하고 협력하는 열린 마음과, 아름다운 준법정신입니다. 유일한 유색인으로서, 나는 직책상 각 종 회의와 행사를 진행하며, 경기를 기획하고 규칙을 설명하며, 임무를 맡기고, 때로는 명령까지하지만, 그들은 조금도 어색해 하거나 불쾌감 없이 자연스럽게 순종하고 협력하는 대범하고 성숙한 모습은 나를 한 없이 겸허하게 만듭니다. 기회가 나는데로 그들의 손에 쥐어주는 건강기별이나 소책자, 상으로 수여되는 재림교회 진리가 오롯이 담겨있는 소중한 책들을 최대의 예의를 갖추어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는 모습은 퍽이나 품위롭습니다. 주 3회 골프를 치면서 주차장을 가득 메우고있는 차들의 손잡이 하나하나에 전도지를 끼우는 아내의 열성이 대견스럽습니다. 


이따금 회의 때나 경기 진행 시 불평을 하거나 딴지를 거는 회원들이 물론 있지만, 일단 결정이 되고 나면 다수의 원만한 총화에 금방 묻혀버리고 맙니다. 피부 색깔을 초월하는 공정과 건전한 상식, 이것이 미국의 힘이고 위대함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민족이 반드시 배워야할 덕목일 것입니다. 골프 유희는 우리를 자연으로 돌아가게하고, 피부에 색맹이 되게하며, 서로를 포용하게하고 마음을 너그럽게합니다. 어깨에 힘주고 방귀깨나 뀌는 한국인이 먼 작은 나라에서 온 다른 피부색을 회장으로 선출하고 이렇게 12년째 군말없이 순종하고 따를 수있을는지는 나도 자신이 없습니다.


골프는 생의 시초를 찾아가는 일종의 실존적인 유희입니다. 자연을 통하여 우리는 새로운 경이로 우주를 바라보고, 생의 약동을 느끼며, 환희와 감동으로 실존을 체험하고, 인간 존재를 가능케한 최초의 불꽃에 귀의하게 됩니다. 같은 차원에서, 어머니는 어린 생명의 불꽃이자 존재의 샘으로서, 경이의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게하시고, 신앙의 프리즘으로 영원한 빛을 보게해주셨습니다. 나아가 어린 눈을 열게하셔서 멀리 높이 보게하시고, 눈부신 영원의 지평을 흠모하며, 빛나는 생명의 푸른 언덕을 소망으로 바라보게해 주셨습니다. 골프도 이처럼 우리가 의식하든 안하든, 존재의 불꽃과 어머니의 품을 찾아 하나의 점(Hole)으로 돌아가는 본능적 귀향의 원초적 유희입니다. 많이도 우리의 생의 모습과 닮아있고, 우리의 삶을 투영하는 많은 체험들을 그 속에 포함하고있습니다. 


해 저무는 4월의 서편 하늘에는 저녁놀이 조용히 불타고, 따스한 바람이 부드럽게 이마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저 멀리 마지막 18번 홀의 흰 깃발이 바람결에 펄럭이면서,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처럼 나를 오라고 손짓하는 듯합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소풍 날을 기다리는 아이들 처럼, 시즌 첫 날인 내일이 마냥 기다려집니다. ♧ 


(4-2023 남명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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