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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022.10.12 13:32

가을을 숨 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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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숨 쉬며


낙엽.jpg


시야에 들어오는 온 대지가 가을로 무러익어 여유롭고, 그 풍광은 밝고 붉고 노랗고 산뜻합니다. 높은 산에 머물던 가을이 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숲에 내려 앉더니, 어느새 호수를 끼고 펼쳐진 들판을 죄다 휘감고는, 앞뒤 뜰을 접수한 후 내 마음 밭에까지 닿아 있습니다. 멀게 만 느껴지던 어두운 숲이 밝은 빛깔로 바뀌면서 성큼 가까이 다가와있고, 나무들의 개성과 잎들의 특징이 더욱 또렷하게 들어나는 계절의 한 가운데로 접어들었습니다. 잎들은 떨어져 숲은 부끄러운 듯 속살을 들어내고, 향긋한 풀들이 무성하던 곳에 간간이 서늘한 빗줄기가 내려 이별을 재촉합니다. 빗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에 떠밀려, 자연도 은빛으로 다가올 순수한 휴식의 겨울을 향해 아쉬움과 기대로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거울 같이 맑은 하늘 아래 말없이 서서, 자연의 순리를 따라 어김없이 변해가는 계절의 색채를 바라봅니다. 나무들은 이제 하나씩 둘씩 잎들을 지워가고, 가을이 짙어 가는 길목에 서서 위대했던 여름을 떠올립니다. 가을은 추억의 계절이자 서늘한 현실, 눈물겨운 결별의 계절입니다. 그리움은 짙게 단풍 빛으로 스며들고, 외로움은 엷게 맑은 하늘 빛으로 가슴에 수묵집니다. 스산한 가을 바람을 안고 계절을 따라 걷다가 우수의 이끼가 끼어있는 언덕의 바위 위에 앉으면, 내면은 실존적 우수 속으로 속절없이 빠져듭니다. 


생의 빛나는 색깔이던 초록은 서서히 퇴각하고, 계곡은 토해낸 가을 빛으로 붉게 타며, 비에 젖은 낙엽들이 꽃처럼 곱게 깔려있는 가을 동산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갈대는 단풍에 취한 사슴처럼 이리저리 미풍에 흔들거리고, 한폭의 산수화같은 산의 가슴에 안겨서 아침 안개를 품고있는 계곡에는 깊은 상념의 호수가 떠있습니다. 애틋한 마음을 품고 그들의 고향인 땅으로 떨어지는 낙엽들의 체념의 아우성이 온 산과 들에 메아리칩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입장하는 신부의 발걸음 위에 어여쁜 소녀가 꽃을 뿌리듯, 노년의 홀로 걷는 외로운 산책 길에, 진달래꽃은 아니더라도 '사쁜히 즈려 밟고' 갈 붉은 낙엽을 간간이 뿌려주는 나무들이 참으로 고맙고 대견합니다. 주어진 생, 성장의 과정을 따라, 싹으로 태어나 잎으로, 꽃으로 피어나 열매로, 끝내는 낙엽으로 살다가 홀로 길을 떠나는 것이 인생이려니 생각하니, 날 저무는 이 가을 날, 비에 젖은 상념은 퍽이나 숙연해집니다. 가을 언저리에 초막 하나를 짓고 이 풍진 세상을 등지고, 한 잎 낙엽이되어 붉게 탄 갈잎 속에 함께 묻히고 싶어집니다. 세속의 덧옷과 문명의 겉옷을 다 벗어버리고, 그냥 한 잎 낙엽이되어 어디론가 바람에 실려 훌쩍 떠나고 싶은 심정입니다. 이제 나이가 드니, 이 시끄러운 세상을 귀 막고 눈 감고 벙어리 되어, 깊은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바람처럼,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비에 젖은 산 빛깔이 더 뚜렷하듯이, 가슴은 향수에 젖은 채, 슬픔이 스며있는 가을 빛 속으로 더 깊이 잠겨듭니다. 허허로운 나그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듯 냇물이 정답게 속삭이며 흐르고, 허리를 띠처럼 두른 안개에 푸근히 안겨있는 계곡에서는 자유와 평화가 이슬처럼 내리고있습니다. 이 시원한 계곡에 마음을 담그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흰 구름이 되거나, 깊은 산 초막에 머물다 가는 바람이 됩니다. 붉게 탄 가을 잎새들이 쓰고 간 고별의 시를 눈물로 읽으며 내 영혼 그들 곁에서 한 밤을 지새고 싶습니다. 세상 어느 시인이 불타는 영혼의 저 붉은 잎새들보다 더 장엄한 서정시를 쓸수 있을까요? 


점점 야위어 가는 가을 숲은 생명현상의 현실임을 넘어 지엄한 진실입니다. 낙엽처럼 떨어져 나가는 생의 서글픈 비밀이자 진리의 순간이 가을입니다. 이제는 생의 참 모습을 꽃도 아니요, 무성한 푸른 잎도 아닌 낙엽을 통해 바라보는 계절입니다. 하늘이 움직이고 땅이 돌고 우주가 꿈틀거리는 어김없는 계절의 변화 속에는 삶의 신비로운 이치가 숨겨져 있습니다. 붉은 단풍 잎이 청년의 가을을 표상한다면, 노란 은행 잎은 노년의 가을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은은한 가을의 향을 뿜으며 주황색으로 익어가는 이 계절의 성숙은 아마도 정숙한 여인의 가을일 것입니다. 


사라져가는 우리들의 꿈, 낭만, 어릴적 추억들이 되살아나서 가슴이 절절해지는 계절 또한 가을입니다. 가을이 되면 잊을수 없는 내 고향 마을 모습이 떠오릅니다. 노을지는 서편 하늘을 등지고 어린 소년은 배부른 소를 몰고 골목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고, 지붕 위에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빨간 고추가 널려있으며, 온갖 추수로 넓은 마당이 가득 차있던 가을, 무료한 바둑이는 애꿎은 하늘을 향해 멍멍 짖어 쌓고, 가슴이 시리도록 눈부신 하얀 들국화를 바라보던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옵니다. 


영롱한 가을 빛에는 한 생을 눈부시게 살다가 마침내는 돌아가야 할 인생의 전환점이 가까워 옴을 예감하는 기별이 서려있습니다. 봄, 여름을 멋도 모르고 훌쩍 보낸 후, 이제야 나이가 들어 조금은 철이 든 나를 발견하고, 어디론가 귀의하고 싶은 실존의 위기를 느끼는 계절입니다. 의연한 모습으로 먼 길을 떠나야할 운명의 때를 바람에 날려가는 낙엽들이 보여준 탓일 것입니다. 


가을 산에 머물면 마음의 심연은 깊어지고, 가슴에 멍에와 아픔을 간직한 채,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비장한 일몰을 반추하게 됩니다. 짧은 인생 이제부터라도 영원을 사는 경건함으로 조촐하지만 맑고 순수한 삶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불타는 가을 산처럼 진리의 보석을 갈고 닦아 세상을 비추는 한줄기 빛으로 살 수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루하루가 평범하지만 가을은 축복이 넘치는 순간들이요, 감사가 넘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날은 저물고 바람은 스산한데 남은 시간의 공터에 서서 황홀한 이 가을을 마지막으로 만끽하고 싶습니다. 가을은 이처럼 일년 중 생의 가치를 점검하는 최초의 계절이자,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는 마지막 성숙의 순간입니다. 


불타는 석양에는 돌이킬 수없는 옛 꿈이 슬프고, 밤에는 달빛이 교교하여 더욱 가슴이 시려오는 계절입니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흘러가고, 바람은 서둘러 길을 떠납니다. 구름따라, 물 따라, 낙엽과 함께 만물이 어디론가 정처없이 떠나는 시간입니다. 숲에서 풍겨오는 억새풀의 향취나 들에서 실려오는 들국화의 가느다란 향기 까지도 이제는 절절한 소중함으로 아끼고 가슴 깊히 담아둡니다. 가을은 비움으로 오히려 부요해지는 산이요, 침묵으로 더 깊어지는 바다입니다. 나의 존재의 집에는 환희와 고독, 기쁨과 슬픔이 교대로 집을 지키나 봅니다.


(10-2022 남명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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