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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회 신자로서 위기에 대한 이해

우리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생애의 기간을 하나님의 역사가 마치어질 때를 바라보면서 그 사건이 성취될 순간이 있음에 대한 유예의 기간으로 살고 있다. 그 유예의 기간이 언제 끝나는가에 대해서는 계 15:8의『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일곱째 재앙이 마치는 전임을 보여준다. 일곱째 재앙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예수의 재림이다. 그리스도의 중보가 마쳐지면 재앙이 내리기 시작한다.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증보 사업을 그치게 되어 큰 음성으로 다 되었다는 음성이 울려퍼지는 순간 이 땅에서의 형편 묘사로는 계 22:11의『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하심으로 생사 간에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주님이 이 땅에 내려오는 순간에는 우리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한 하나님 앞에 홀로 서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문제 되는 것이 중보자 없이 서게 되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이다. 중보가 없는 동안에 우리 믿는 이들은 어떻게 되나? 이미 우리들의 운명이 선고된 때이므로 두려움을 갖게 되는 이들은 악인이지 의인들은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살게 된다. 성령이 함께 할 것이고 이미 우리들은 죄 용서를 다 받았다. 더 이상 죄악이 우리에게 더 관여할 자리를 주지 않는다. 죄를 정복할 힘을 갖게 되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단의 비난에 대하여 우리를 변호하신다. 우리들이 갖는 두려움이란 내가 온전히 구원을 받을만한 품성을 마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남은 일은 하나님의 권면의 말씀이 내 안에 역사되는 일이다. 대쟁투 425쪽과 623쪽에는 각기 “하늘 성소에서 그리스도의 중재가 끝날 때 지상에 살아 있는 자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들의 옷은 흠이 없어야 하며 그들의 품성은 뿌린 피로 말미암아 죄에서 깨끗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은총과 그들 자신의 부지런한 노력으로 그들은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대제사장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고 계시는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여지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비록 생각으로라도 유혹의 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사단은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가 발을 붙일 어떤 곳이 있는지 찾는다. 그러던 중 어떤 죄된 욕망을 품게 되면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유혹의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라고 친히 말씀하셨다. 사단은 하나님의 아들에게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길을 전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셨다. 그러므로 그분에게는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죄가 전혀 없었다. 그것은 환난의 때에 서게 될 사람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할 상태이다.” 이상의 글귀에서 표현된 것 중에는 죄가 없는 정결한 상태를 언급하고 있음이 우리들 자신의 품성의 미흡에 대한 염려를 갖게 한다.

  유예 기간이 다 하였다고 하여 모든 은혜가 소멸되어 닫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재앙이 내리는 때에도 진리는 분명히 존재하여 진리로 인하여 마음에 역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을 자들이 존재한다.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은혜의 문이 닫혀졌으나 유예의 기간이 끝난다 하더라도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여전히 늦은비의 강림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품성이 완전한 경지로 승화된다. 우리들은 그 동안 살아온 것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역사는 계속된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향하여 자비의 문을 굳게 닫는 일은 없다. 우리가 도달하여야 할 상태로 우리를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과 확신을 가질 것이다.

중보자 없이 서야 함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과 함께 우리가 당면할 환난의 때에 대한 것이 우리를 압박하게 된다. 환난에 대한 것도 점검하고 넘어가야만 한다. 우리는 재림교회에 들어와서 귀가 따갑게 들은 말 중의 하나가 환난에 대한 언급이다. 우리들은 지상의 생애를 살아오면서 어쩌면 환난을 한 번도 당하여보지도 않고 생애를 마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난의 가르침은 우리의 신상 생활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 것으로 단지 장차 일어날 미래의 사건에 대한 지식의 하나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환난이란 용어가 낯 설은 단어는 아니다. 환난은 성경에 줄곧 언급되는 단어이다. 예수님 자신의 생애는 환난으로 이어진 삶의 연속이었다. 그가 겪은 수많은 생애의 과정이 그러하였다. 주님이 겪은 생애 중에서 대쟁투의 심각한 면을 헤아려보게 된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과정이 있게 될 것인가? 작은 환난과 큰 환란이 있을 것이나 유예 기간 동안에는 작은 환란이, 유예 기간이 마칠 때에는 큰 환난이 이어진다. 작다고 하여 결코 미비한 환난은 아니다. 계 13장에서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을 자들에게 임하는 죽음의 위협이 따르는 재앙이다. 누구나 다 통과할 시험대이다. 그러다가 늦은비의 능력을 받아 대환난을 통과하게 된다. 우리들이 가져야 할 태도로는 진리로 인하여 준비된 마음을 갖고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는 때에 우리가 지녀야 할 품성 연마에 모든 노력을 기울려 죄 없이함을 받아야만 한다.

 성경에 예고된 환난에 대해서는 단 12:1에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이라고 명시하였다. 그것을 피하여 갈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의 기간을 경감시켜 주기도 하셨다. 아무리 호되고 두려움이 앞서는 환난이지만 예상하였던 것보다는 다소 가볍다고 하였으나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마음 태세를 갖추어야만 한다. 우리들이 갖는 고통이라는 것들은 우리들이 통치자 앞으로 불리어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신앙에 대하여 답하여야 하는 일이다. 신앙으로 잘 단련된 이들에게는 별반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성령으로 말할 바의 것을 주실 것이고 감옥의 형벌이 따르나 그것이 중세기의 종교재판과 같은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평소의 자유로운 생활을 차단되었으나 어려움의 기간이 우리들의 품성 계발의 시간이 된다. 마 25장 6절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말을 주석하면서 품성은 위기에 나타난다고 하였으며 은혜의 시기가 끝나는 때에 최후의 큰 시련이 임하게 되고 그때에는 심령의 부족을 채우기에는 이미 때가 늦게 된다.

 위의 표현들은 우리들이 유예의 기간이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내 안에 형성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로서 성화의 과정을 계속 지켜나가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짓지 아니한 자로 받아주시는 의의 자격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행위로 의로워지려고 하지 않고 성령의 도움을 힘입어 성화의 생애를 살아간다. 현재의 모든 시련을 품성 연마의 기회로 삼고 복음을 이해하는 성도가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의 탄원이 있는 이 세상에서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이르는 그 날을 맞기 위하여 성령을 받으며 환난 날에 견딜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 하면 위에서 언급한 환난을 연상함에서 우리들의 품성의 완전에 대하여 몰두하면서 고민하게 된다. 나는 완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으로 인하여 신앙을 포기하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만다. 우리가 어떠한 정도가 되어야 구원을 받게 되나?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때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리스도인 품성이 그의 백성에게서 완전히 재현될 때에 그는 당신의 백성을 찾으시려고 강림하실 것이라는 예언의 신에 말씀을 보게 된다. 여기에서 완전히 라는 용어가 삽입되었다. 여기에서의 완전은 예수처럼 죄 없는 상태인가? 주님이 오시는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144,000인을 언급할 때에도 저들은 흠이 없는 자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로 입게 거짓말이 없는 자들이다. 계 6:12-16에서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악인들은 바위와 산더러 그들 위에 떨어지라고 외치고 그들의 진노의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서리요 라고 한다. 설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저들이 되어져야 할 품성의 면이 있는 법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완전이라는 용어를 어떻게 유추하는가가 초미의 관심이 된다. 그 말의 의미를 새기려면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는 내용들과 함께 음미하여야 한다. 빌 3:12-14에는『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15절에는『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여기에서는 성숙한 자들로 생각하여야 할 것에 대하여 명시한다. 엡4:11-13에서도『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이렇게 되려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한다. 여기에서 온전한 사람이 어떠한 경지인지를 서술한 말이다.

 위에서의 완전이란 말의 의미는 성숙을 가리킨 것으로 죄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은 자들로 그리스도의 의로 우리의 죄를 가리웠다. 이는 우리가 죄가 없는 상태는 아니다. 우리가 완전주의자가 된 것이 아니다. 주께서 당신의 백성을 되찾기 위해서 오시는 때는 환난을 통해서 품성의 단련을 받아 세속적인 죄악의 때들은 벗어난다. 우리들은 행동에서만이 아니고 심령 속에서도 정결한 사고로 죄를 짓지 않는다. 우리가 완전해지고자 애를 쓴다 하여서 이루어짐이 아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심을 인하여 환난을 통과할 수 있게 되고 증보자의 도움 없이도 하나님이 받으시는 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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