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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1 21:35

재림교인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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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회는 공통적으로 믿는 신조들을 설명한 28 기본교리를 채택하였다. 나는 28개 기본교리가 토지의 경계를 표시하는 울타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신의 토지가 어디서 끝나고, 이웃의 토지는 어디서 시작하는지를 말해준다. 이것은 재림교회를 다른 기독교 그룹들과 구별해 준다. 또한 왜 우리가 침례교인이나 그 밖의 다른 교파 교인이 아닌 재림교회 교인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 울타리가 그 안에 자리한 집에 대해 소상히 알려주고 있는가? 28개 기본교리가 재림교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 본질을 말해주는가?

○ 재림교회의 시작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돌아가신 사실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 믿기만 하면 모든 사람의 구원이 확인되었다. 그때 십자가 옆에 재림교인이 몇 명이나 그 곁에 서있었을까? 한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죄의 용서와 구원의 확신은 그 때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어졌다. 단 한명의 재림교인이 없어도 구원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재림교회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재림교인이 출현하기 이미 오래 전에 그 문제는 해결되었다.

예수께서 AD 31년에 하늘로 올라가신 다음 대제사장으로 봉사를 시작했다. 그때 재림교인이 있었는가? 재림교회는 이 일을 위해 세워진 것이 아님 또한 분명하다. 우리의 기도를 그분의 의의 향과 섞으시는 예수의 봉사는 재림교회가 존재하기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을 돌보아 주시는 성령의 봉사는 재림교회의 존재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기독교의 중요한 진리라는 것과,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진리임에는 틀림없으나, 재림교회는 이러한 진리들을 다른 곳에서부터 물려받았다. 이 진리들은 재림교회의 존재 없이도 다 세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지막 시대에 재림교회가 필요 되었을까?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 14:7). 이 경고는 하나님께서 하늘성소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1844년에 그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 때가 바로 재림교회가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하기 시작한 때가 아닌가? 바로 이런 시점에 SDA가 존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시기 때문에 한 무리와 교회가 필요한 것이다. 주님께서 과거의 사업과는 다른 어떤 것을 시작하신 것이다.

○ 대 쟁투: 왜 재림교회가 탄생했는가?

대쟁투 역사는 오랫동안 진행되어왔다. 그 발자국마다 사단은 하나님께 고소해 왔다. “당신의 구속사업은 실패했습니다. 그것은 증명됐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사단이 증명하기 위해서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저기 블레셋? 이방인? 하나님의 백성 사이 안에서 증거를 얻는 것이다. 사단은 그의 주장을 널리 알리는데 성공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이 하나님은 불공평하고 잔혹한 분이시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신약 이후의 대쟁투에서 사단은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의식들과 인간의 행함을 원하신다고 믿게 하였다. 성경과 교회사를 읽어 나가면서 어떤 이들은 사단이 이 대쟁투에서 이겨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두려움이 다니엘 8장에서 여러 질문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언제까지 사단이 이 대쟁투의 싸움에서 이겨나가겠습니까? 언제까지 하나님의 이름이 짓밟힐 것입니까? 영원까지 갈 것입니까? 이 선악의 대쟁투에서 사단이 이길 것입니까?”

그 답은 14절에 있다. “다니엘아 인내하라. 수세기가 지난 다음에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어떤 때가 올 텐데 하나님께서 그 대쟁투의 전쟁을 이기실 것이다. 사단이 패배할 것이다. 그때 성소가 회복될 것이다. 이제 내가 죄를 다루는 방법이 옳다는 것이 변호될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옹호될 것이다. 이 싸움은 결코 영원히 가지 않을 것이다. 2300주야 후에 성소는 정결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성호를 더럽히는 일에 끝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명예는 회복될 것이다.” 바로 그것이 다니엘 8장의 약속이다.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롬3:4). 이 성경절에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것은 고소가 취하되다, 무죄를 선고받다, 명예가 회복된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지구상에서 보여진 가장 존귀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율법과 그분의 성품을 옹호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은 선하고 그분의 성품은 사랑이라는 것을 보이셨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풀리지 않고 남아있었다. 끊임없는 반역 속에 살아온 죄 된 인간이 죄짓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할 수 있으셨다지만, 인간은 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받고 계신다. 하나님의 방법이 옳다고 증명되어야 한다. 이일들은 나의 구원에만 속한 것이 아니다. 이 지구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사단이 하나님께 도전했고 하나님께서 그 도전에 응답하셔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심판대 앞에 올라가 계신 것이다. 그래서 온 우주의 거민들이 하나님이 정말 올바른 창조주인지 선택하게 하신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명예의 회복은 십자가에서 완성되었으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정부를 옹호하기 위한 어떤 것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예가 십자가에서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님을 드러내는 증거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행성에서 죄의 문제가 종결되기 전에 있을 마지막 명예 회복을 기다리고 계신다. “온 하늘이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옹호하는 것을 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RH, 1901, 4, 16). 하나님의 율법이 과연 죄인들에게도 선하고 옳은 것인지 증명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 안에 당신을 나타내 보이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 완전하게 재현될 때에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시려고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이다”(COL 69). 이 유명한 구절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서 그리스도의 성품이 보일 때까지 재림은 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지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그러한 지연이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사단의 고소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증명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4:5절은 예수께서 오시기 직전, 지구에서 살 마지막 세대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놀라운 약속을 하셨다. 거짓말이 없고 어떤 종류의 흠도 없는 한 백성을 가지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하나님의 명예, 그리스도의 명예는 당신의 백성의 품성을 온전케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DA 671).

여기에 연관된 것은 우리의 명예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호와 그분의 성품이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완전케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정말 이것을 이루실 수 있을까? 만일 그분이 우리를 완전케 하실 수 없다면 그분의 말씀은 거짓말이 되는 것이고 사단은 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렇게 간단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보좌의 명예를 걸고 당신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성취시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COL 148).

“모든 품성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며 모든 사람은 저희가 충성의 편을 택했는지 아니면 반역의 편을 택했는지를 보여 줄 것이다. 그 때에 끝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옹호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DA 763).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호를 옹호하실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그래서 EGW은 이 사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지막 구속의 사건’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구속의 역사 마지막 부분이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하신 그 구원의 역사! 그 죄의 책임을 주님께서 대신 지시고 사람들이 한 번 더 살 기회를 주신 것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마지막 세대의 삶의 모습에서 하나님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까지는 그 대쟁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희생은 완성되었지만, 대속 사업은 완성되지 않았다. 바로 이 점이 재림교회를 다른 모든 그리스도교회들로부터 구별하는 것이다. 마지막 대속 사업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쟁투에서 승리하시고 언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지에 관한 것이다.

이는 재림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사단은 거짓말쟁이며 하나님께서 진실을 말씀하고 계셨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정도로 간단한 것이다. 이것이 재림교회의 본질과 기별이다.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반역으로부터 이 지구가 영원히 안전하게 되는 단 하나의 소망은 사단의 고소가 거짓으로 판명되므로 더 이상 재고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모두가 확실히 아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개입되어야 한다.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들어오셔서 그분께서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 곧 우리의 마음을 정결케 하고 우리가 그분께 완전히 순종하도록 하시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언제 재림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이 아무리 원하시더라도 원하시는 때에 이 땅에 오실 수 없는 것을 아는가? 주님께서 세상역사를 마치시고 다시 오시는 것은 이 땅의 교회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분께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이지, 우리가 그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강림은 아무 시간에나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대쟁투에서 승리하시는지에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재림교회 역사 가운데 이미 두 번이나 오실 뻔 했고 오시려고 했다.

1840년대에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인도하셨고 그들은 놀라운 경험을 가졌다. 그들이 대 실망을 통과하고 신실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144,000의 모습으로 들어올리셨을 것이다. 5만정도의 신자들이 50명 정도만 남았다. 예수께서는 1844년 후에 곧 재림하시기를 원했지만, 그러실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분의 백성들이 연합하여 그분과 함께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지체하셨다.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다시 새 출발을 하셔야만 했다. 40여년이 지난 다음에 두 기별자를 보내셨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보내신 것처럼 그들은 이제 주님께서 오실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의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EGW께서 이것은 큰 외침의 시작이라고 했다. 이제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인치기 시작한다고 말씀했다. 만약에 그때 그 일이 이루어졌다면 우리는 1900년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교만이 들어왔다. 다시 한 번 백성들은 뒷걸음질 쳤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라고 묻는 대신, “우리의 지도자들이 무엇이라고 하는가?”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일이 또 연기되었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재림을 백 년 동안이나 지체한 것이 진정으로 우리 자신들이었다. 우리의 선구자들의 회개는 진실하였고 그 때부터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해 가르쳐오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1888년 기별을 부인하는 정신은 1890년과 마찬가지로 지금에도 강력하다.




1890년대에 있었던 우리의 실패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한 번 당신의 계획을 미루셨고, 이번에는 백년이나 넘게 지체되었다. 이제 그분께서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에 또다시 호소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만 그분과 연합하여 전진할 준비가 되어있다면 당신께서는 언제고 우리를 본향으로 데리고 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1888년에 있었던 질문과 동일하다. 이번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당신의 계획을 실행하실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대쟁투에서 하나님의 명예를 옹호하기보다는 계속하여 우리의 이기적인 관심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

최근에 사려 깊은 재림교회 한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백성들이 그것을 이해했던지 못했던지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가셨고 또한 그것을 나중에 분명하게 가르쳐 주실 것이었다(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다 이해하지 못했다.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므로 이해시켰다). 1844년도에 사람들이 그 중요한 사건을 이해했던지 못했던지 간에 예수님께서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신 후에 나중에 그것을 설명해 주신 것이다(그렇게 됐다. 1844년도에 아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이 세상의 단 한 사람도 예수님께서 하늘성소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몰랐다. 그러나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성소에서 하시는 일을 끝마친 후에 그것을 설명해 주실 수는 없으시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늦은 때이기 때문이다”(프리지 목사).

지금 이 사건은 십자가나 1844의 사건과는 다른 것이다. 나중에 가서 이해하게 될 기회들이 그때는 있었다. 그러나 은혜의 시간이 끝난 다음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존재케 했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이 구원키 위해서? 하나님의 성품이 어떠한지 온 세상에 보이시기 위해서 그들을 택하신 것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원하면 예루살렘에 와서 우주의 하나님에 대해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 택하신 것이다. 그들이 그 임무에 성공했는가? 실패했는가? 불행하지만 우리가 그 대답을 안다.

왜 재림교인을 부르셨을까? 할 수만 있으면 더 많은 재림교인들이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 몇 년 전 400만이었다. 지금은 1400만이다. 그러면 우리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의 임무는 이스라엘백성을 부른 것과 같을지 모른다. 우리 하나님의 성품을 세상에 알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리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어떤 질문이 있다면 우리를 보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 이스라엘로부터 배울 교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당신의 택하신 백성으로 부르셨을 때, 그들만이 구원에 적합한 백성이 되게 하려고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성품의 지극히 아름다움과 그분의 정부에 대해 세상 나라들에게 증거 하기를 원하셨다.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는 세상을 계몽시킴으로 예수께서 초림하실 때 모든 이들이 그분을 반기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그 사명을 성취하였는가? 안타깝게도 그들은 예수의 초림을 위해 이 세상을 준비시키지 못하였음을 우리는 안다.

그리스도의 사업은 그들의 실패와 연관되어 이루어졌음을 주목하기 바란다.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 즉 세상 가운데서는 거의 봉사하지 않으셨음을 아는가? 예수의 대부분의 시간과 힘은 이스라엘을 회개케 하여 회복시키는데 부어졌다.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환히 비추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가장 어려운 일(그들의 편견과 냉담의 벽을 깨뜨려 다시 하나님을 순종하도록 하는 일)에 당신의 시간의 대부분을 바치셨다.




이제 재림교회의 사명은 이스라엘의 사명과 동일하다는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재림교회가 홀로 구원받기에 합당하게 되도록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과 당신의 정부의 지극히 아름다우심을 세상에 증거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사명은 이 세상을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도록 준비시키는 것이다. 이제 정직하게 질문해 보자. 재림교회는 그 사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가고 있는가?

아마도 우리는 애드벤티스트 리뷰 1986년 7월 3일자에 있는 윌리엄 존슨 목사가 쓴 권두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DA가 지역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여론 조사가 실시되었다.

“비록 응답자 가운데 70%가 재림교회에 대해서 듣거나 읽어본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그 교회의 무엇이 제일 좋느냐고 물었을 때는 52%가 아무 응답을 하지 않았다. 또 21%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이는 72%가 교회에 대해 아무런 매력적인 것을 생각할 수 없었다는 것이 된다. 이는 ‘재림교인들에 대해서 가장 좋아하지 않는 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과도 평행선을 달린다. 51%가 아무 응답을 하지 않았으며 20%는 특별히 싫어하는 것이 없다고 답했다. 분명한 형태를 나타내기에 교회가 실패했다는 것이 나를 걱정시킨다. 우리가 우리의 빛을 말 아래로 감추고 있다는 것이 나를 괴롭게 한다.”

애드벤티스트 리뷰 1995년 2월호에 보고된 여론 조사에서는 53%만이 재림교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다고 답하였다. 덧붙여서, 우리를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수도 현저하게 증가하였다.

이 보고가 있은 12년이 지난 오늘, 2007년 1월 재림신문의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오해들이 더욱 증가하여 정보의 85%를 신뢰하는 인터넷상에서 재림교인은 십자가의 예수를 믿지 않는 이상한 사이비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네티즌은 묻고 있다. “안식일 예배 안 보면 다 지옥가나요?” “안식교는 이단이라… 그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네요. 네, 안식교는 토요일에 예배를 드리지요. 그 이유는 안식교에 대해서 자세한 지식은 없지만, 안식교는 구약성경을 믿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메시야를 기다리고….” “여호와의 증인하고 몰몬교와 하나님의 교회(안상홍), 안식교의 교리가 비슷합니까?” “재림교에서도 결혼상대자를 지정하나요?”


다시 한 번 물어보자. 우리는 예수의 재림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키는 일에 성공하고 있는가, 실패하고 있는가? 우리가 직면하기 어려운 진실은, 유대인들이 이천년 전에 실패했던 것과 똑같이 우리도 실패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영감의 글은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향해 갖고 계신 계획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의 질서, 하늘 정부의 계획, 하늘의 거룩한 조화가 지상에 있는 당신의 교회에서 나타나게 되기를 계획하신다. 이렇게 하여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그분은 영광을 받으신다”(DA 680).

교회가 세상을 향한 하늘 정부의 계획을 나타낼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신다는 사실을 주목하라. 하늘의 정부의 계획이 현재 SDA에 나타나는가? 아니면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계획이 난무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루어야 할 위대한 일이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참 질서, 진실된 훈계, 진실 된 조직을 볼 수 있어야 한다”(Ms 30, 1990).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마치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마지막으로 완전하게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며 그리하여 세상은 그 영광으로 환하게 될 것이다”(TM 50). 하나님의 사랑이 교회를 통해 나타날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라. 이것은 천사나 돌이 소리 지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대쟁투를 끝내는 데 있어 하나님의 교회가 그분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키는 우리의 사명에 있어 성공적이지 못한 이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날 많은 이들이 받아들이는 접근 방법은 교회 내에 있는 문제들을 무시하고, 세상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꽤 매력적인데, 왜냐하면 예수께서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고, 많은 세상 사람들이 복음에 수용적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만일 우리가 교회내의 불순종에 대해서는 그저 잊어버리고 영혼 구원에만 중점을 두면 우리가 하고 있는 그 일로 인해 바로 교회 내에서 찬양을 듣는다. 또한 성경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침례 받게 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성취감이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실패하는 선민들에게 오셨을 때 쓰셨던 방법인가? 삼년 반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자멸할 위험에 빠진 당신의 귀중한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바치셨다. 많은 이방인들이 복음을 필요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는데 거의 시간을 쓰지 않으셨다. 그분의 급선무는 당신의 백성들이 진리의 기별을 이방인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들을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음악은 세 가지 <멜로디, 리듬,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두 다 필요한 것이지만 중요성에 있어서 똑같지는 않다. 멜로디가 가장 우선순위에 놓여야 하며 리듬이나 반주에 의해 가려져서는 안 된다. 설교, 강의, 출판물, 또 캠페인과 건물, 장비를 위한 헌금 호소 등은 다 절대적으로 필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남은 교회에 맡겨진 사명을 성취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것들은 멜로디가 아니다. 기껏해야 반주인 것이다.”

죄를 승리하는 멜로디>

어린양과 모세의 노래

높이 높이 올라가는 노래

하늘의 패턴과 점전 가까워지는 노래

세상과 점점 멀어지는 노래

클라이맥스로 올라가는 노래

질그릇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노래

지상의 것들로 옷 입은 질그릇 속의 노래

천사들에 의해서 증거를 받는 노래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가 있나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로다

드디어 성도들의 무리에 의해 이 노래가 불려지는 것이다.

“라오디게아여, 경고를 받으라! 다윗은 한때 수효의 마력의 희생자가 되었다(대상 21:1 참조). 사단은 너무도 교활하게 교만과 자기만족으로 이끄는 유희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미덕 대신에 2류로, 질을 양으로, 내핍을 허영으로 대체하도록 꾀인다. 숫자와 규모, 양이 던져주는 매력은 가만히 놓아두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자리를 사생아와 섞인 무리로 가득 채우고 삼켜 버려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가데스 바네아'에 멈춰 설 수 밖에 없도록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이 생기기를 원치 않으신다.”

“라오디게아여, 그대가 취하는 노선을 숙고해 보라! 잠시 멈추어 서서 그 많은 활동들 목회, 교육, 의료, 사회의 어디에서부터 참되신 모본을 따르기에 실패했는지 살펴보라.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간구한 후, 신령한 말씀에 비추어 앞일을 계획하라. 악을 선하게, 죄를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만드는 자기 합리화를 멈추라.”

“라오디게아가 진솔한 자아 성찰과 타협하지 않는 자아 훈련을 하기에 실패한다면 폭풍이 몰아쳐서 그 대열을 흔들고 뒤집어 정결케 하여 주께서 직접, 교회 녹명책에 있지 않거나, 성직을 차지하지 않은 사람들로 더불어 다스리시도록 자리를 마련할 것이다”(TM 300, 5T 80, 롬9:28 참조).

○ 급선무: 재림교회의 사명

첫 번째 사명은, 하나님의 명예를 옹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늘 성소의 정결 사업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성소가 모든 죄의 기록으로부터 깨끗케 되기 전에, 계속하여 하나님의 성호를 더럽히는 죄의 오염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먼저 정결케 되어야 한다. 재림주의는 하나님께서 사단의 거짓말에 대항하여 싸우신 육천년 동안의 싸움을 끝내시면서 이 대쟁투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심에 관한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품성과 율법에 대하여 올바로 말하고 사단이 우리의 순종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 우리의 생애로 사단이 잘못 되었다고 증명하는 것이다. 이것이 재림교회의 멜로디이다. 이 멜로디가 아름답게 울려 퍼지기 전에는 우리의 임무가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사명은, 아름다운 소식을 세상에 전파하고 예수님을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다. 첫 번째 사명이 이해되고 착수되어야만, 두 번째 사명이 성공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계속하여 그래왔던 것처럼 이 순서를 바꾸려 한다면 우리는 계속하여 실패할 것이다. 우리는 마차를 말 앞에 놓아왔다. 필연적으로 이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충성스러운 충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변호 받으면 그때 큰 외침이 세상에 전파될 것이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실 것이다.

재림교회가 이런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단은 얼마나 큰 결과가 여기에 포함되었는지 안다. 사단은 재림교인이 2400만 명까지 증가되는 데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가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있는 한 별로 관심이 없다. 우리 규모가 얼마나 커지는지 우리의 전도가 얼마나 성공적인지 관심이 없다. 우리가 계속해서 범죄하고 계속해서 용서받는 동안에는 이 지구상에서 사단은 아무렇지도 않듯이 존재한다. 우리의 목적에 대해 별로 겁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사단은 잘 안다. 하나님께서 인칠 수 있는 사람들이 발견되면, 마지막시대에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준비되면, 구속사업의 마지막 부분이 완성될 텐데 그때 사단은 흑암에 처하게 된다. 그래서 사단은 어떤 일에 제일 큰 노력을 할까?

재림교회의 사명은 지구상에 일찍이 존재했던 어떤 교회들의 사명과도 사뭇 다르다. 재림교회의 사명은 초대 교회나 왈덴스인들, 혹은 마르틴 루터의 사명과 다르다. 우리의 사명은 완벽하게 독특한 것이다. 이 사명은 이 지구의 표면에 거했던 어떤 다른 그룹에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성소 정결 사업이 진행되는 대속죄일의 시간에 살고 있기 때문이며 이 대속죄일은 독특한 논점과 관련이 있다.

○ 재림교회의 목적: 하나님의 이름을 변호하기 위해 생긴 교회이다.

나 개인의 구원의 확신을 얻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2000여 년 전에 이미 십자가에서 그 일을 이루어 놓으셨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을 얻게 마련해 놓으셨다. 단 한 사람의 재림교인이 없을 때도 그 일을 해놓으셨다. 우리가 그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른 한 역할을 주신 것이다. 내가 하늘 가는지 안 가는지 이게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빨리 사단이 이 세상에서 쫓겨나는지 그것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언제 대쟁투의 싸움을 이기시는지가 관건이다.

그 울타리 안의 집이 어떻게 생겼는가? 재림신앙의 목적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은 옳고 사단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모든 사람들은 율법이 의롭지 못하며 순종할 수가 없다는 사단의 주장을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DA 309).

사단은 순종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 자체가 불공평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독재자이기 때문에. 그때 우리가 사단에게 동의한다면 하나님의 법은 순종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의 행동으로 사단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이다. 사단에게 한 표 주는 것이다. 매일 삶 속에서 사단을 지지하는 것이다. 불순종하는 투표를 통해 사단의 주권을 계속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투표는 항상 읽혀지고 있다.

“만일 자기의 결점을 숨기거나(우리가 얼마나 많이 이렇게 하는가! 우리가 죄를 짓고, 죄에 대해 핑계하고 아니면 덮어서 남들이 알지 못하게 한다) 핑계하는 자들이 사단이 그들에 대하여 얼마나 기뻐하며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을 조롱하는지 볼 수 있다면(우리의 모습으로 사단이 예수님과 천사들을 조롱한다) 그들은 속히 죄를 자복하고 버리게 될 것이다”(GC 489).

우리가 죄를 지으면, 숨기면, 죄에 대해 핑계하면 이 불순종하는 자들 때문에 사단은 예수님을 조롱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가 속히 그 죄를 고백하고 없애려고 할 것이다. 우리가 지옥 불에 갈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구원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불명예를 드렸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행동으로 사단이 하나님을 조롱하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 에스겔의 호소

에스겔은 배도와 퇴보의 시대에 살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특별한 기별을 그에게 주셨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겔33:7).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이 기별은 단순히 에스겔 시대에 살고 있던 하나님의 배역한 선민들에게 주어진 호소가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배역한 선민들에게 주어진 호소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무 늦기 전에 돌이키라. 오 재림교회여, 왜 자꾸 죽으려고 하느냐?”

우리가 정말 신실한 재림교인이라면 이 호소를 무시할 수 있는가? 때때로 외과 의사의 칼은 고통스럽고 치유되는 과정은 어렵지만 우리의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크신 의사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놀라운 약속은 재림교회에게도 놀라운 약속이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주님을 거절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돌이키고 돌이키라. 오늘 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만약 주의 백성들이 돌이키면 사단은 자기의 시간이 끝날 것을 안다. 그래서 사단은 우리에게 함정을 팠다.

○ 사단의 4가지 함정

1. 세속적인 것과 문화 우선주의

세상에 매력적인 것이 많다. 돈벌어서 살기 위해서, 세상의 염려들, 할일이 너무 많아서 주님을 위한 시간이 없다. 기도와 성경 볼 시간이 없다. 세상이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요구. 사단이 아주 성공하고 있다.

또한 문화 우선주의. 우리는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한다. 우리는 여론 조사를 하고 그 결과에 기초해 무엇을 할지를 결정한다. 영감의 조언은 구식으로서 문화적 재조명을 받아야 하므로 거기에서 지혜를 구하는 대신 가장 뛰어난 학자들의 연구 결과와 논리에 의존한다.

2. 잘못된 복음

“너의 죄를 주님께서 용서하신다. 성화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런 것은 나중에 자연히 열매로 맺힐 것이다. 순종하는 것은 율법주의다. 너무 애쓰지 말아라.”

믿기만 하면 절대적인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는 복음이다. 이 복음은 지난 삼십여 년 동안 재림교회 안에 계속하여 들어오고 있으며 지난 십년 동안 큰 세력을 얻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거짓 확신을 주는 복음으로써, 죄를 계속 지으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약속한다. 이 복음은 예수께서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므로 작은 죄들을 무시해도 좋다고 가르친다. 그분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는 한, 우리가 계속 죄를 짓는 것에 상관없이 우리는 그분과 함께 구원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덫은 사단의 다른 어떤 속임수보다도 더 많은 신실한 재림교인들을 잃어버린바 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두 번째 기만, 잘못된 복음이다.

3. 쓴 뿌리의 태도(비판하는 정신)

이런 잘못된 복음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은 아주 눈을 크게 뜬 사람들이다. 사단은 이들에게 속삭인다. “교회가 하는 짓 좀 봐라. 교회가 얼마나 타락했느냐! 교회에 반역이 있다. 그들이 믿는 데로 살지 않는다. 학교가 잘못 가르친다.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교회를 향해 전쟁하자. 교회에서 나가자.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자.” 교회 안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나머지 시간을 교회의 죄를 폭로하고 묘사하는데 바친다.

사단은 우리가 어느 함정에 빠질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잘못된 복음에 빠지든지 쓴 뿌리의 태도를 가지든지 우리가 진리를 옹호할 때 사단의 태도를 가지고 진리를 옹호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4. 중립적인 태도-가장 위험한 함정

“우리는 극단을 싫어한다. 우리는 그저 중간으로 가야한다. 우리는 균형 져야 한다.” 오늘날 교회의 분위기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비난 받지 않으려면 그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그저 교회 와서 목사 얘기 듣고 그저 집에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말라. 어떤 말을 하면 어떤 편을 든다고 몰아세울 것이다. 우린 그거 원치 않는다. 그저 교회 왔다가 문지방만 밟고 왔다 갔다 해라. 그렇게 하면 안전하다.” 우리는 교회 안에 문제가 좀 있다는 것을 인식은 하나 영혼구원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일들이 잘 돌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우리가 이루고 있는 성장을 보면 상황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이들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우리는 안전하게 이 문제들을 제쳐 놓는다. 이상한 음악과 예배 방식이 교회 안에 들어와도 우리는 그저 우리의 최선만 다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불에 데지 않도록 불 밖에 나가 있는 것이 확실히 안전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침묵이 에스겔의 호소와 조화를 이루는가? 적군들이 성벽을 기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도 침묵을 지킨다면 우리는 과연 충성스러운 파수꾼인가? 아니면 우리는 우리의 교회를 구하기 위해 우리에게 맡겨진 일을 행할 것인가? 독특한 재림교회의 기별 없이는 독특한 재림교회의 증인이 나올 수 없다. 재림교회의 복음은 현 기독교의 복음과 다르다. 우리는 재림교회의 복음이 꺼져 가도록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를 보는 우리의 관점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우리는 침묵을 지킴으로 이 관점이 사라지도록 할 것인가? 우리가 보는 율법과 은혜의 관계는 독특하다. 심지어 건강 개혁에 관한 우리의 이해조차도 독특한데, 이는 우리가 질병을 피하고 장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성화시키도록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가장 높은 표준을 세우므로 우리의 마음을 놓고 벌어지는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승리하시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말씀하셨던 것과 똑같은 권위를 가지고 그분께서 현대의 선지자에게도 말씀하셨음을 또한 우리는 안다.

사단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우리를 잡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성을 보이지 않게만 하면 된다. 우리가 죄짓고 또 회개하고 계속 이렇게 반복하게 하면 된다. 이렇게 할 때 지구상에서 자기가 안전할 것을 아는 사단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참된 재림교인이 되자. 과거에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한 사람들이 되자. 자기의 생명보다 주님을 더 사랑한 사람들 그땐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만든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그때 사업을 마치고 우리가 본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네가 보행자와 함께 달려도 피곤하면 어찌 능히 말과 경주하겠느냐 네가 평안한 땅에서는 무사하려니와 요단의 창일한 중에서는 어찌하겠느냐"(렘12:5). 오늘날 우리는 평안한 땅에서 보행자와 함께 달리고 있다. 우리 앞에는 말과 요단의 창일함이 놓여있다. 지금은 준비할 시간, 우리의 성품을 강하게 단련시킬 때이다.

만일 교회가 승리하는 교회가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이라는 우리의 이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누군지, 왜 존재하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의 굳은 심령이 깨져서 유쾌하게 하는 이른비가 능력의 늦은비로 이어지도록 기도하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세대의 재림교회가 죄로 저주받은 이 세상의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을 위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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