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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G. 화잇이 재림교회사에 남긴 유산
오만규 교수 - 삼육대학교 신학부

1827년생인 엘렌 G. 화잇은 17세에 첫 묵시 경험으로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이하 "재림교회"로 약함)의 역사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87세로 타계하기까지70년 간을 재림교회 역사와 더불어 살았다.
전체 구·신약 시대를 통털어도 120년간 홍수를 경고했다는 노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엘렌 화잇만큼 장기간에 걸쳐 공적인 선지자의 직책을 수행한 사람은 실로 드물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가 1915년에 타계했을 때, 교회에 남긴 유산은 약 6만 매의 원고, 부동산, 가구, 저작권, 등 6만 7천 불의 재산이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부채는 그보다 2만 1천 불이 더 많은 8만 8천 불이었다.
이로써 엘렌 화잇은 이 교단에 유산보다는 부채를 더 많이 남긴 사람이 되는 것인가? 그가 남긴 6만 매의 원고를 화폐 가치로 바꾼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것이다.
 그러면 물질적 유산은 그렇다 치고 그가 끼친 정신적 유산과 부채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유산만 있고 부채는 없을 것인가? ?예언의 신?과 조사 심판의 교리 및 기타 재림교회의 사회적, 문화적 제한성과 관련되는 엘렌 화잇적 전통에 부담을 느끼고 그 부채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어떠한 사실에 기초하고 또 얼마만큼 부당하고 얼마만큼 정당한가? 무엇보다도 재림교회의 역사적 행보에 있어서 엘렌 화잇은 유산인가, 부채인가? 재림교회의 미래는 엘렌 화잇과 같이 가야 하는가, 아니면 엘렌 화잇을 역사에 남겨두고 홀로 가야 하는가? 재림교회의 역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질문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현금에 이르러 더욱 절실한 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20여 년에 걸친 엘렌 화잇에 대한 교회 내외의 역사적 연구를 통하여 엘렌 화잇의 선지자 활동의 인간적 측면이 많이 드러났고, 특히 그의 많은 저술이 그 시대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다른 저술가들에 대한 문헌적 의존도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결과 엘렌 화잇에 대한 신화적 인식이 크게 퇴색되었다. 참으로 지난 20-30년은 엘렌 화잇의 비신화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재림신도의 마음에 새겨지는 엘렌 화잇의 초상화는 백지 위에 펜을 들고 하늘만을 응시하는 묵시 일변도의 모습에서, 수많은 장서들이 꽂혀 있는 서재의 책상 위에 성경과 참고 문헌을 펴놓은 채 하늘을 응시하면서 원고지를 메우는 모습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즉 성경과 참고 문헌의 도움을 받고 있는 선지자의 모습이 재림교회 신앙 대중이 납득하는 엘렌 화잇의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이같은 분위기를 엘렌 화잇의 공식적인 권위의 실추로 이해하는 여론이 만만치 않는 것이다
. 미래에 있어서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의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 역사에서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가 재림교회 역사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알아보는 일이 매우 요긴할 것이다.
부탁받은 바, "재림교회 역사에 끼친 엘렌 화잇의 공헌"이라는 주제도 그러한 논의의 하나가 되리라 생각한다. 필자는 이러한 주제에 대한 선구적 연구를 소개하기보다는(독립된 제목으로 이 주제를 취급한 연구를 찾지 못했다) 재림교회 역사에 대한 필자 나름의 지식에 기초하여 재림교회 역사에 끼친 엘렌 화잇의 공헌을 차례로 지목하여 볼까 한다.

첫째로,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의 하나는 그가 행한 여러 업적들보다도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그 뒷어깨와 등을 내 보이고 서 있는 한 사람 엘렌 화잇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등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알았듯이(출 33:23), 자녀들이 어버이의 굽은 등을 바라보면서 어버이의 희생적 일생을 읽듯이 백성들 또한 공복의 뒷어깨와 등에서 그의 평생의 헌신을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엘렌 화잇이라는 이름의 한 헌신적이고 한 고상한 사람,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엘렌 화잇 자신이야말로 엘렌 화잇이 이 교회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이라는 말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존재이다. 하물며 눈, 비바람 어지럽게 휘몰아치는 험한 들길을 뒷사람의 이정표를 만들며 걸어간 개척자 같은 사람일 경우야말로 더 말할 나위 없다.
 재림교회 역사와 미래에 엘렌 화잇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었다는 사실만큼 필자에게 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은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사야는 말하기를,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사 30:20)이라 하였다.
 재림신자들에게 엘렌 화잇 같은 스승이 있다는 사실, 제 아무리 어렵고 힘든 역사의 길을 갈 때에라도 그 같은 스승을 그 눈앞에서 잃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 더 든든한 위안과 격려와 용기가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필자는 청년 때에 "우리나라도 성인 한 분을 모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라고 탄식했다는 최남선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103인의 성인을 교황청으로부터 추존받을 때 400 년 천주교 역사에 성인 한 사람 배출하지 못한 어느 가톨릭 국가의 이야기를 함께 논평한 기사를 읽은 일이 있다. 해외 수출 실적 몇 만 불을 노래할 때, 우리나라의 지적 수출, 정신적 수출을 생각했었던 일도 있다.
우리의 주변에, 우리 교단 역사에 엘렌 화잇 같은 사람 한 분이 있다는 사실만큼 더 중요한 사실도 많지 않을 것이다.
 엘렌 화잇에 대한 가장 모진 비난과 비방의 원전을 마련한 캔라이트(Canright)마저도 자신의 동생과 더불어 엘렌 화잇을 영결하는 영결식에서 "엘렌 화잇의 관에 한 손을 얹고 뺨 위로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여기에 한 고상한 그리스도인 여인이 타계하여 누워 있다'고 독백하였다." 그는 엘렌 화잇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칭송하였다.
8년여에 걸쳐서 재림교회의 자료들을 면밀히 연구하고 나서 The Truth about Seventh-day Adventistism이라는 저서를 내놓은 저 월터 마틴(Walter Martin) 역시 "화잇 여사는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자신이 확신에 따라 주님을 증거하는 과업에 무한정으로 헌신했던 여인이었음을 믿는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실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중에서, 우리의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게 해 주었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가정부에게까지 자신과 자신의 아들까지도 구원을 상실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고백한, 진실로 자신의 구원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심각하게 생각했던 진지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야말로 재림교회의 이상적 인간상(人間像)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야말로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다.

둘째로, 엘렌 화잇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서 일으킨 그의 선지자요, "나시르 사람"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서 선지자를 일으키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그의 축복이 어떠함을 드러낸 사건이 바로 선지자 엘렌 화잇의 출현이었다.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복주신 그 많은 일 중에서도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너희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을 일으킨"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스라엘 자손들아 과연 그렇지 아니하냐"(암 2:9-15)고 다그쳤다. 엘렌 화잇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 중에서 일으킨 선지자요 나시르 사람이었다. 역사상의 그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폐해로 말미암아 기독교 역사에서 선지자 칭호는 기피되는 명칭이었으며 엘렌 화잇 자신도 그 명칭보다는 하나님의 사자(使者)라는 칭호를 선호하였다.
 그러나 과연 그는 선지자였다. 그리고 우리 중에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일으킨 사실은 참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큰 은총이요 축복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선지자 없는 사회는 바르게 존속할 수 없다. 선지자 없는 사회의 그 무모함과 방자함과 무책임스러움과 혼미함과 피폐함을 우리는 잘 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이 할거하는 사회의 그 무자비함과 불경됨과 그 어리석음과 그 낭패에 대해서도 잘 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 중에 확실하고 책임 있는 목소리, 사랑과 권위의 진정한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하고 든든한 재산일 것인가?
그 목소리가 1840년대 말 그 작은 무리로 하여금 실망 후의 혼돈에서 재림신앙의 확실성을 붙잡게 하였으며, 중병에도 불구하고 책임에 매달리려는 제임스 화잇(James White)을 지도 일선에서 용퇴시키고 재림운동의 책임 전선에 젊은 후배들을 나서게 하였으며, 1888년에는 재림교회를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 원칙에 확고히 서게 했으며 연이은 교회 재조직과 켈록(John H. Kellogg) 파동을 성공적으로 대처하게 하였다.

셋째로, 그는 재림교회의 미래를 위해 비젼(vision)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그는 1844년 실망 직후인 17 세부터 87 세로 타계할 때까지 전후 2000 회에 걸쳐 비젼을 보았다. 필자는 재림교회의 역사와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그리고 자신의 재림교회 사역을 생각할 때마다 현대의 재림교회와 우리의 각 기관은 미래의 비젼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를 자문하게 된다. 우리는 비젼 있는 교회인가? 우리 기관은 비젼 있는 기관인가?
 우리 교육은 비젼 있는 교육인가? 우리 지도자나 사역자나 교회나 기관은 비젼을 가지고 있는가? 재림교회는 맨 주먹에서 일어난 단체다. 오직 엘렌 화잇의 비젼을 믿고 미래를 밀어붙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교회가 생기고, 해외 선교가 이루어지고, 출판소가 설립되고, 학교가 세워지고, 병원이 발전했다. 그녀는 첫 계시 이전부터 꿈을 꾸는 소녀였다. 그는 평생을 통해 수많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았다. 1844년, 첫 계시에 앞서 그는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보았는데, 이 꿈은 그의 첫 계시며 함께 재림교회 역사관의 특성을 표현하는 중요한 계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서는 묵시나 꿈이 동반하지 않은 일상에서도 필요에 따라 자신의 주변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자주 감지하였다고 한다. 재림교회를 위한 엘렌 화잇의 비젼은 그의 타계와 더불어 역사에서 그 기능이 이미 끝났는가? 우리를 축복할 엘렌 화잇의 비젼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교와 성화와 구원에 대한 그의 비젼은 아직도 제대로 이용되지 못한 채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맡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재림교회 기관을 위한 그의 확신에 찬 비젼도 충분히 이해되거나 응용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비젼 없는 사회의 고통이 실감되는 시대이다. 지금이야말로 비젼이 참으로 아쉬워진 시대이다.
그리고 사이비 비젼이 성황하는 시대이다. 엘렌 화잇의 비젼에 빙자한 가짜 비젼도 이목을 끌만한 시대이다. 지금이야말로 엘렌 화잇의 비젼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요망되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넷째로, 엘렌 화잇은 재림교회에 정체성(identity)를 제공한 사람이다.
 19세기 중반의 미국 동부에 재림교회와 경쟁하는 그만그만한 숱한 신생 종교 집단들이 발생하였다.
 그 중에는 1844년 실망 이후 재림 운동의 전통에서 발생한 신생 교단들도 있고, 그 밖의 다른 종교 운동과 연관하여 발생한 단체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의 운명은 기독교의 보편성을 강조한 나머지 기성 기독교단에 흡수되어 사라지거나 아니면 자신의 특성에 매달려 기독교의 보편성을 상실한 유사 기독교 단체로 살아남든가의 하나가 되었다.
 ?크리스쳔 사이언스?, ?몰몬 교회?, ?여호와의 증인? 등이 후자의 범주에 속할 것이며, ?복음주의 재림교회? 등이 전자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재림교회는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정통성 있는 개신교회로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여 주변의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되었다. 재림교회는 정통 개신교의 하나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자기 나름의 독특한 개별성을 지닌 개신교회로 발전하였다.
 독특한 개체로서의 재림교회를 가능케 한, 즉 재림교회의 정체성을 가능케 한 요소는 ?안식일?과 ?예언의 신?의 교리였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재림교회는 그 역사에서 또 한 차례 기독교의 보편성과 재림교회의 특수성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재림교회가 정통 개신교의 원칙에 서려면 예수의 대속 신앙과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즉 "오직 성경으로"의 원칙에 확고해야 한다. 동시에 재림교회의 특수성을 유지하려면 재림교회 신앙 전통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엘렌 화잇의 위상 문제에 대한 현명한 이해와 수용을 도출해야 할 것이다.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칙에 충돌하지 않으면서도 재림교회 전통과 엘렌 화잇의 고유한 위상을 유지시키는 신학적 이해가 우리들이 추구하는 목표이다.

다섯째로, 엘렌 화잇은 (1) 밀러 운동(Millerite Movement)의 정통성 확인, (2) 안식일, (3) 성소 신학, (4) ?예언의 신? 등 특수 교리를 중심으로 분파(sect) S.D.A.를 성서 중심의 교회(Church) S.D.A.로 이끈 핵심적 인물이었다.
 1888년의 그리스도 중심적 칭의 신학과 1900년대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이 그 일례이다.
 엘렌 화잇을 재림교회의 모세로 비교한다면, 모세가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고 법과 관습과 종교의 여러 제도를 완비하여 이스라엘 민족국가를 창출하고 그 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이끌었다면, 엘렌 화잇은 재림신도들을 영적 바벨론을 형성시킨 기존 기독교 신앙 세계로부터 탈출시켜 특유의 관습과 법과 종교적 인식을 갖춘 분파(sect) S.D.A.를 창출시키고 끝내는 이들을 영생의 젖과 꿀이 흐르는 성서의 보편적 복음 전통으로 이끈 지도자라 할 수 있다.
 남은무리에게 보낸 하나님의 사자 엘렌 화잇이 아니었던들 참으로 작은 그 무리가 강력한 신앙집단으로 결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며, 큰 빛인 성경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인 엘렌 화잇의 메시지(message)가 아니었다면 재림교회가 개신교의 솔라 스크립투라(sola Sriptura)의 원칙에 충실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여섯째로, 엘렌 화잇은 재림교인의 문화적, 정신적 특성을 창출하였다.
 그의 글이 재림교인들에게 ?예언의 신?(Spirit of Prophecy)의 활동으로 수용되면서 재림신자들은 예언의 백성과 신(성령)의 백성으로 성장하였다. 자본과 기술이 사람의 심령을 압도하는 시대에서 정신과 영과 혼이 있는 백성, 거룩한 성령의 백성이 된다는 사실, 그리고 오늘만 있고 오늘마저 혼미한 시대에서는 예언적 미래의 비젼을 가진 백성이 된다는 사실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또 엘렌 화잇으로 말미암아 재림신자들은 책의 백성이 되었다.
 재림교회는 성서운동으로 시작한 개신교 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재림신자들은 엘렌 화잇의 방대한 글을 성실히 읽지 않고는 재림신자다운 재림신자가 될 수 없다.
 엘렌 화잇 저서의 읽기와 성경 읽기는 피차 상승 작용을 하고 있다는 조사가 있었다. 필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서와 ?예언의 신?의 독서는 재림교인의 그 밖의 건전한 독서 생활을 촉진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 독서의 교양이야말로 재림교회의 온건하며 활력 있는 신앙 전통의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엘렌 화잇은 또 재림신자들로 하여금 교육의 백성이 되게 하였다. 재림운동의 대실망이 재림신도들에게 남긴 가장 파괴적인 후유증 중의 하나는 자녀들의 방치였다. 수정을 반복하는 시한부 종말론의 분위기에서 자녀들의 교육적 방치 현상은 언제 극복될지 알 수 없었다.
 이 무리가 오늘날은 그 교육적 전통과 교육적 헌신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교육 통계에 의하면 미국에서 재림교회 집단은 인구 비례로 가장 고학력 집단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국에서는 조사된 통계는 없으나 저학력의 재림 신앙 1세대와 고학력의 재림 신앙 2세대의 현상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여주는 집단의 하나일 것으로 필자는 생각하고 있다. 저학력의 신앙 1세대가 재림교회 신앙생활에서 받은 교육적 자각과 헌신이 자녀들을 고학력 집단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예는 미국에서도 유사하였다.

일곱째, 엘렌 화잇의 재림교인의 가정과 건강 생활에 끼친 영향은 이제 너무나 상식적인 아야기가 될 것이다.
 바로 엘렌 화잇에 대한 "건강의 여신자"라는 세평과 건강복음이라는 재림교회 메시지만으로도 이 사실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여선지자로서의 특성과 이른바 여성적 가치라고 하는 가정적 가치관의 상관관계를 추가하고 싶을 뿐이다. 재림교인들의 자상하고 온건한 가정적 품격은 여선지자 엘렌 화잇이 없이는 어려웠을 것이다.

여덟째, 엘렌 화잇은 초기 교회와 종교개혁, 그리고 19세기 초반의 미국 재림 운동을 재림교회의 탄생과 발전에 연결시킨 독특한 사관을 제공한 사람이다. 그의 사관은 점진적 계시(progressive revelation)라는 것이다.
 이 사관은 재림운동에 대한 바른 평가와 재림교회 성립의 정당성을 밝히는데 그치지 않고 재림교회 전통 내의 여러 장애를 극복하는 원리로 작용하였다.
 재림교회는 성서적 기독교의 진정한 신앙 전통에 굳건히 서 있을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새로운 빛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묵시 중 가장 중요한 묵시의 하나는 천성을 향하여 뻗어 있는 곧은길이요 그 길로 행진하는 재림신도들의 모습이다.
 재림신도들은 도상의 백성, 앞으로 약진하는 백성이다.
 그는 이밖에도 하늘에 이르는 계단을 꿈에 본 일도 있다. 재림교회는 한 계단씩 차례로 올라가는 교회이다. 전통 위에서 미래와 천상을 향해 확고히 행진할 뿐 결코 전통에 고착될 수는 없다.
재림교회에서는 성화가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평생의 사업이다.
엘렌 화잇의 일생 자체가 점진적 변화 그 자체였다. 엘렌 화잇의 저작 자체가 개정을 거듭한 점진적 변화였다. 재림교회 신학과 신앙과 선교가 점진적 변화이며 발전이었다.
재림교회는 그 신앙 운동의 운명적 기원[Movement of Destiny] 못지않게 이 운동의 종국적 운명과 목표[Destiny of Movement]를 중요시한다. 재림교회가 종국적으로 도달하는 그 진리의 모습에 비추어 본다면, 1850년대의 창조적 주장이나 1888년의 개혁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심지어는 엘렌 화잇의 글 자체라 할지라도 진리의 근사치에 불과할 것이다.
엘렌 화잇이 말년에 이르러 성경을 더욱 높이 쳐들어 보인 제스처에서는 재림교회 운동의 운명이 엘렌 화잇의 지평까지도 넘어서라는 권고가 들어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아홉째로 그는 재림신도들의 가치관을 미국 중산층의 가치관으로 정착시키는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 배틀크릭 시절의 젊고 병들고 가난하고 무식한 묵시 보는 사람 엘렌 화잇의 과격한 윤리관과, 캘리포니아 시절의 지성과 건강과 부와 아량과 경륜과 지위와 명성과 책임을 갖춘 연만하고 노숙한 여선지자 엘렌 화잇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어 보인다.
 초창기의 그의 글들은 사진을 찍는 데 돈을 사용하는 것까지도 낭비라고 생각할 만큼 반 지상적, 반 현세적, 종말적 음조가 짙은 반면, 후기의 선지자는 이 지상의 건전한 직업에 대한 배려를, 즉 중산층의 관심을 자주 나타내었다.
 시골 생활, 건강, 가정, 교육, 생활인의 건전한 상식, 반 가톨릭적 정서 등이 미국의 중산층적 가치관들이다.
 정치적 참여 문제에 있어서도 초기에는 투표하지 않는 정치적 무관심을 강조하다가 다음에는 우리와 종교적 견해가 같거나 가까운 사람을 지원하게 하였고 말년에는 우리의 신앙 양심을 대변하려는 정치적 포부까지도 수용하였다.
그는 원칙을 중요시했으나 이른바 편협한 원칙주의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음식물과 정부 관계 및 선교 정책에 있어서도 엄격한 원칙주의보다는 건전한 상식을 존중하였다.

열째, 그는 교회의 교리적 전통을 수립하고 교권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했다
. 엘렌 화잇은 그의 저서에서 스미스, 앤드루스, 크로지어, 와그너 등의 신학적 주장을 옹호하거나 차용함으로써 이들의 주장을 영속시켰다.
그는 바벨론 공세에서 교회를 확고히 보호하였다.
 특히 엘렌 화잇의 유산위원회를 대총회 산하에 둠으로써 엘렌 화잇의 유산이 교회 파괴의 요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최소화시켰다.

열한째, 그러나 그는 생존기간 늘 교회 지도부와 일정 거리에 거처함으로써 자신을 교권의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왕과 같은 권력(kingly power)을 행사하려는 행정자들의 교권 남용에 대한 견제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교권 남용이 이루어질 때마다 교인 대중은 늘 엘렌 화잇을 쳐다볼 수가 있었다.
 그의 교권 남용에 대한 견제력은 오늘날도 그의 글을 통해 행사되고 있다.
 그의 이 같은 독립적 자세는 재림교회 역사에서 일어난 여러 자영 기관과 독립 목회 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작용하였다.

열두째, 그는 온갖 사회적 봉사, 개혁, 선교에 앞장섬으로써 우리에게 바람직한 교역자의 상(像)과 바람직한 신자의 상을 제공했다. 필자는 타 교파 친지로부터 그의 복음 교역자(Gospel Workers)야말로 진정한 고전이라는 극찬을 들은 바 있다.
 이 책은 바로 엘렌 화잇의 교역자관을 나타낸 것이며 또 하나님의 종으로서 자신의 지표를 기술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 글을 끝맺는 마지막 말은 아무래도 엘렌 화잇이 재림교회에 끼친 공헌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참으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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