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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16.07.24 18:03

사랑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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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들이 종교에 관하여 가장 자주 하는 불평 가운데 하나는 종교가 너무 제한하는 것이 많고 까다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한이 없고 엄격한 원칙이 없는 교회일수록 많은 사람이 몰리게 된다. 술을 먹어도, 담배를 피워도 아무런 제재가 없는 종교일수록 인기가 많다. 구원은 받되, 신앙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다”는 태도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는 그리스도인들 마저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방해 받기 싫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그래서 어떤 것을 ‘포기하라’는 성경의 요구를 강조하는 목회자나 교회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다.

 


현대 그리스도인은 너무 "유별난 사람”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어떤 원칙과 진리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 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교회가 너무 율법주의적이고 옹졸하게 되면, 많은 훌륭한 사람이 실망하여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다는 이론을 종종 전개한다.

 


어떤 원칙과 표준의 옳고 그름을 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원칙과 표준을 사람이 만들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만드셨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에 의해서 독단적으로 만들어진 금기 사항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세우신 사랑의 규제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은 부드럽고 안이한 장미꽃 길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성경 말씀이 좁은 길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마 7:14) 그리스도인이 되는 첫 번째 원칙 중 하나는 자아부정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눅 9:23)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완전한 굴복을 의미한다. 마태복음에 나오는 값진 진주의 비유는 영생이라고 불리는 어마어마한 상급을 얻기 위해서는 하나라도 남김없이 모두 투자할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마 13:45~46)

 


많은 사람의 입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이 너무나 좁고 협착 하다는 불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눅 14:33) 또한 예수께서 부자 청년 법관에게 하늘나라를 얻기에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부자 청년 법관은 그 한 가지 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주님보다 다른 어떤 것을 더욱 사랑했고 순종하기를 거절함으로써 구원을 잃어 버리게 되었다.

 


이러한 면에 있어서 예수님의 입장은 언제나 분명했다. 심지어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까지 하셨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7)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결국에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떠남으로써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서 언제나 변명하고 핑계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늘의 진리와 원칙을 제시할 때에는 사랑스럽고 지혜롭게 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스럽고 지혜롭게 말씀을 전할지라도 듣는 사람의 마음 속에 진리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진리는 자아부정을 요구하기 때문에 진리에 대한 반역적인 생각과 무관심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의 입에서는 불평하는 말과 태도가 나오게 된다.

 

 

사랑하면 불평이 없어진다

 


혼은 엄격한 원칙이 가장 많이 포함된 관계이다. 결혼하는 사람은 자신이 전에 좋아하던 많은 것을 포기하기로 약속해야 한다. 남편이 될 사람은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여자들과 데이트할 자유를 포기해야 하며, 자신의 남은 생애를 오직 한 여성을 위해 묶어 놓는 결정을 하게 된다. 신부도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남편에게 바치고 이전에 사귀어 온 다른 남성들은 버리기로 동의하는 서약을 해야 한다. 결혼 서약이야말로 사람이 자신의 인생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좁고도 협착한 길을 걷기로 맹세하는 서약이다.

 

 

제한이나 규칙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삶이 불행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면, 결혼이야말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결혼은 가장 행복한 사건이다. 왜 그럴까? 왜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자신의 생애를 신랑에게 바치기로 서약할 때 그토록 빛나고 행복해 보일까? 왜 신랑은 자신의 남은 생애 동안에 자신의 행위가 매우 까다롭게 제약 받을 것이라는 서약을 하면서 그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혼에 따르는 제약들이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 이유는 배우자를 향한 마음과 감정 때문이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 불평하는 신부의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아아, 이젠 내가 더 이상 다른 남자와 데이트를 못하게 됐어. 이건 너무 불공평해. 결혼에 관한 법과 원칙은 나에게 남편에게만 충실 하라고 강요하고 있어. 결혼하는 것은 너무 제약이 많아”라고 불평하는 신부를 본 적이 있는가? 또한 새 신랑이 “이제부터는 봉급을 아내와 나눠 써야 한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는가? 결혼에 관한 법칙과 규칙이 너무나 까다롭고 엄격해서 그것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감옥을 갈 수도 있지만, 신랑 신부는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불평하지 않는다.

 


신부가 간음을 하면 법에 의해서 신부는 체포되어 감옥에 가지만, 신부는 그러한 법에 대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사랑은 두 사람을 붙잡아 매고 있는 모든 원칙과 규칙들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게 하며,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자신들의 결혼 생활을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잘못하면 처벌 당할까 봐 두렵기 때문에 서로에게 충실한 것이 아니다.

 

 

깊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원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충실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남녀는 결혼은 하였지만 더 이상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것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이 땅의 지옥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가해진 제약과 부담들에 대해서 신경질을 내며 불평을 한다.

 

 

진리에 대해서 불평하는 진짜 이유

 


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교인은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결혼하였지만 그분을 사랑하지 않는 교인이다. 그는 종종 자신에게 좁고 제약이 많은 종교의 짐을 얹혀 주려고 하는 교회와 설교자를 심하게 비난한다. 그러나 문제가 교회나 설교자에게  있는 것일까? 문제의 진짜 원인은 불평을 하는 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를 가져보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잘 알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만나는 경험을 하고 있지 못하면 진리와 성경이 말하는 원칙에 대해서 불평하게 된다.

 

 

거듭나지 않은 교인의 마음 속에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교리들이 이곳 저곳에 쌓여 있다. 받아들이지 않아서 먼지가 쌓인 교리 뭉치나 규칙과 신조의 목록이 마음 속에 쌓이게 될 때, 영혼은 힘을 잃고 죽어가게 된다.참된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개인적으로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되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 원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지점까지 깊은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신앙 생활을 하는 그들의 동기가 단순히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에 있다. 그들은 천둥과 벼락을 피하기 위해서 종교를 가진다. 지옥 불을 피하기 위해서 주님을 섬긴다. 그래서 그들이 늘 못마땅한 듯한 찌푸린 표정을 짓고 다니게 되는 것이다. 아!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 얼마나 왜곡되었는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믿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혼식을 방금 끝내고 나오는 새 신랑과 신부보다도 훨씬 더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어떤 부인이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하지 않으면 이혼당할까 봐 매일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면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 그와 같은 긴장 상태에서 결혼 관계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말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고 그를 진심으로 기쁘게 하기 원하기 때문에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든다. 또한 남편은 아내의 생일이 가까워 오면 아내가 무엇을 갖기 원하는지 주의 깊이 살펴보고 귀를 기울인다.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아침마다 출근하는 남편을 붙잡아 놓고 반복해서 알려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남편은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정확한 날짜를 기억했다가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산다.

 


이와 마찬가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날마다 성경을 탐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최고로 사랑하는 분을 어떻게 하면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예언과 교훈들을 탐구할 것이다. 20세기역 성경에는 이와 같은 표현이 있다. “무엇이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인지를 발견하기 위해 언제든지 애를 쓰십시오.” (엡 5:10)

 

 

그리스도인을 위한 얼마나 멋진 표어인가! 이 표어야말로 주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최상의 소원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십계명 중에서 처음 네 계명을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요약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 째 되는 계명이요.” (마 22:37~38)

 


성경이 말하는 규칙과 엄격함에 대해서 불평하는 진짜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고,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 신앙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신앙으로는 구원도 받을 수 없고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없다.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규칙들을 지키려고 애쓰는 노력 자체가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사랑이 빠진 노력과 투쟁을 신앙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은 무언가 심각한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모든 원동력은 사랑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도 요한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겼던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요일 5:3)

 

 

“하라”와 “하지 말라”의 신앙

 


내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는 강해진다. 세 명의 아들을 키우는 한 어머니가 있었는데, 그 어머니는 아들들이 항상 말끔하고 청결한 용모를 갖추어야 한다는 원칙을 매우 엄격하게 요구하였다. 대부분의 다른 소년들처럼 그 세 아들도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구두를 깨끗이 손질하는 따위의 규칙들을 매우 귀찮아 했다. 학교에 가는 아침마다 어머니는 자신이 세운 법을 따르도록 하기 위해서 아들들에게 어머니의 권위로 법을 강요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사춘기에 들어선 맏아들이 흠잡을 데 없는 깔끔한 모습으로 등교 길에 나서는 것이었다.

 

 

머리카락은 잘 빗질되어 있었으며 구두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어머니는 너무나 놀랐다. 놀라움과 기쁨을 억누르며 그녀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 났는지를 알기 위해서 관찰해보기로 했다. 수수께끼는 금새 풀렸다. 학교에 새로 전학 온 여학생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으로 인하여 맏아들의 태도가 완전하게 변화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 생애가 단지 "하라"와 "하지 말라" 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결혼에 있어서도 실제적인 육신적 결혼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규칙과 제약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들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은 자신에게도 깊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그리스도인 생애가 고역스러운 것을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다고 울상을 지으며 불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그들은 자신들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강요 당한다고 불평한다. 진리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없는 그들의 삶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온갖 금지 조항들을 모아서 강요하는 종교로 보이게 된다.

 


서로 사랑하면 그들은 상대방을 위협하거나 최후 통첩을 보낼 필요가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고 서로를 기쁘게 해 줄 방법들을 찾는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순종을 짐으로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진리를 끝까지 따를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 같은 그리스도인을 원하지 않으신다.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시편 32:8~9)

 


그리스도 교회의 신앙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 받는 신앙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너무나 감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내가 그분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을까?” 라는 한 가지 목표를 가지고 성경을 탐구하는 자들은 빛이 밝아질 때마다 더 밝은 곳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감사의 정신이 온 영혼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드러내 주신 진리와 원칙들이 굴레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좁은 길을 걷는 성도들의 참된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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