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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교회 위기론에 대한 소고(小考)

누지문서                           

   
이 글은 아멘넷의 “한인 1-2세가 함께 고민하는 한인교회의 정체와 고령화 ” 제하의 기사 내용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반론임을 먼저 밝히고 싶다.

동 기사 내용에 의하면 정인수 목사께서는 지난 5월 뉴욕에서 열린 집회에서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이민교회 성장이 멈추었으며, 이제 양적인 성장보다 질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간 미국은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 포스트 모더니즘, 세속주의 흐름으로 인해 한인교회들이 위기 속에 있다고 분석했다”라고 주장한바 이에 대해서 항목별로의 반론과 대안을 부족하나마 이곳에 올리기를 원한다.

첫째, “한인 이민자들의 숫자가 줄어들어 이민교회 성장이 멈추었으며
과연 그럴까 ? 그렇다면 이민과 관련 없는 한국내의 교회 성장이 멈춘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일까 ? 이 원인은 사실 이민자의 숫자가 줄어들음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고령화에 기인함을 직시하여야 한다.

간단히 예를 들어 교회 성가대를 보자. 과거 한국에서는 중고등부 성가대가 있었고 그래서 고교를 졸업하면 자연스레 본 예배 성가대에 올라가며 신진대사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유년주일학교가 줄어들고 중고등부가 줄어드니 성가대에 청년들이 줄어들며 허연 머리와 심한 바이브레션의 나이 든 성가대원만 눈에 띄며 전체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교회의 고령화 - 즉 우리의 젊은이들이 왜 교회에서 사라질까 ?
(1) 어른들의 이중성이다. 부모들이 교회에서와 집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의 교회에서의 모습과 집에서 부모로서의 모습이 다르다. 교회에서 그동안 잘못 가르친 탓이다. 십일조 잘 내고 새벽기도회 매일 출석하고 교회 일에 충성하면 소위 믿음이 좋다하여 교회 중직에 올려지는 풍토와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의 윤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대신에 교회에 충성만하면 된다는 식의 단순 신앙방식에 기인한 탓이 지대하다.

2세들이 뭘 보고 배워야 하나 ? 1세들이 신앙과 삶이 통합된 영성을 갖어야 한다. 외곡된 영성이 이민 사회에 가져다주는 부작용은 사실 엄청나다. 당신이 목사나 , 장로나 ,권사일찌라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처럼 자녀들과 함께 살아 왔는지 감히 묻고 싶다.

(2) 문화적 요인이다. 선교 초기에는 교회 문화가 세상 문화를 리드했으나 1970년대부터는 역전이 되었고 현재에는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이다. 문제의 본질은 문화적인 괴리에 있다.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에게 교회 문화는 별로 재미가 없어졌다. 또한 여전히 교회의 장년층 주도의 교회내 문화와 장년층 위주의 행정 모습들에 젊은이들의 관심과 참여가 사라지는 것이다.

(3) 설교의 문제이다. 과거의 장년층 이상의 세대에서는 “ 잘 몰라도 무조건 믿으면 돼”식의 신앙태도가 강요됐었다. 따라서 과거에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식하여 일방적인 선포가 당연시되어 의문이 제기되지 않았으나 현대에는 설교를 목사의 개인적인 말씀으로 보게 되었고, 더욱이 인터넷의 발달로 유명 설교자의 설교와 비교적인 시각의 대두로 우열을 가리게 되었고 비판의식에 예민한 젊은이들에게 설교는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상태이다.

둘째, “포스트 모더니즘, 세속주의 흐름으로 인해 한인교회들이 위기속에 있다고 분석했다

(1) 기독교가 종교화되고 세속화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교회가 왕성하게 되고 교인수도 증가하지만 점차 그 허구성이 드러나면서 다음 단계에서는 급격한 탈 교회 현상이 일어나게 되며 이것이 현재 가시화되어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세속화의 구체적인 모습은 기독교를 종교의 하나로 끌어 내리려는 종교 다원주의자들과 오로지 일신의 평안과 세속적 축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끝없는 욕심을 지니고 사는 기복 종교적 신자들로 나타난다.

또한 교회 분쟁의 요인인 교권 투쟁에도 나타난다. 목사가 주인이 되어 교회의 삼권을 장악하여 교회 인사권과 재산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특권직인 당회장직을 세습하는가 하면 , 정치적인 장로들이 교권을 장악하고 목사들을 마음대로 갈아 치우면서 자기의 목자들을 피고용인 취급하여 목회를 힘들게 하는 모습들이 그것이다.

그리고 개 교회 이기주의에 편승하여 반대파를 제압하려는 정치적 징계를 제외하고는 건전한 권징이 사라졌기에 방관과 관용 일변도의 태도로 인해 교인들과 목회자들이 도덕적 불감증이 횡행하고 심각한 죄악을 범하고도 별로 죄의식을 못 느끼는 현실이 사실상 교회를 위기에 몰아넣는 주범이라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살아 계신 주 예수의 몸이며 성령이 보호하고 보존하시기 때문에 결코 와해되지는 않는다. 비록 인간의 연약성이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약화시키지만, 성령은 이러한 연약성에 상관없이 교회를 보존하고 계속적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그러면 이에 대한 실질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
첫째, 혼과 영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갤 수 있는 메시지이다.
필자가 칼럼으로 벌써 몇 번인가 주장한 내용이다. 교인들에게 목회자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88.3 %가 설교를 잘 할 때 만족한다고 했으며 교회를 떠나는 이유 조사에서도 이사를 제외하고는 설교에 대한 불만이 가장 높았다.

특히나 현대의 젊은이들은 교육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는 반면, 목회자의 교육 수준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면서 발생한 언어 형식의 괴리 현상이며 언어와 문장 사고의 형식이 맞지 않아 상당수의 전문직 젊은이들이 보다 나은 설교자를 찾아 이동하거나 가나안 신자가 되어 버린다.

더욱이 마음에 안 드는 교인을 향한 표적 설교나, 견강부회(牽强附會)식의 성경 적용이나, 말씀을 설교자 자신에게 적용하여 교회의 머리와 주인 행세를 하려드는 설교를 대할 때는 실로 난감해질 따름이다.

바라기는 고도의 신학적 훈련과 폭넓은 지식을 위하여 목회자로서 하루 일과 시간의 반 정도는 말씀 연구와 기도로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교인들이 하루 12시간 정도로 생업에서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땀을 흘리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지사가 아니겠는지.

둘째, 젊은이들에게 교회 행정에서의 주인 의식을 심어주자.
대부분의 교회들은 기성세대를 우선시하며 따라서 젊은 층들이 교회의 결정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실이다. 헌금과 봉사만 강요당하고 결정권은 없는 젊은이들에게 어찌 교회에 대한 애정이나 충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1) 적어도 30대에서 안수집사를 선출시키고 40대에서는 장로를 선출할 수 있어야 한다. 30대의 안수집사들이 재정위원회에 참여하여 자신이 낸 헌금이 사용되어지는 결정에 참여할 수 있고 선교위원회에 참여하여 선교 헌금을 보낼 곳을 결정할 수 있다면 교회의 분위기는 현재보다 훨씬 안정되고 젊어질 수 있을 것이다.

(2) 필자는 두 아들이 사춘기 때부터 필자의 소득을 자세히 보여주고 설명하여 그 들의 용돈과 학비에 대한 의논과 동의를 구하였다. 흔히 사춘기 시작부터 독립심과 존경 받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교회의 재정 상황을 제직을 포함한 젊은이들에게도 자세히 알려주고 지출 용도도 설명하여 교회가 저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인식을 심어줌이 중요하다. 자신들이 힘들어 번 돈으로 낸 헌금이 올바르게 쓰여진다는 확신이 있는 한 젊은이들이 교회를 위하여 더욱 열심을 낼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세속화나 포스트 모더니즘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헌신이나 자기부인 없이 오히려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테크닉 중심의 신비적 혹은 낭만적 영성을 추구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영성은 중생을 통하여 새로 태어난 영혼이 성령의 인도와 도움을 통하여 인간의 본질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서 점진적으로 자라나며, 실제적인 자기 부인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연합을 통하여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소명에 대한 헌신을 가져옴을 기억하여 비록 더디게 이루어진다하여도 낙심치 말고 계속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목회자와 교회 중직들이 이런 태도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전진할 수 있다면 20년 아니라 그 이후에도 1세권의 교회는 반석위에 든든히 서서 2세 회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 매진할 것은 당연지사이며 생각만 해도 마음 뿌듯한 일이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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