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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4 18:41

목회자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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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것처럼 예민하고 쉽지 않은 이슈가 있을까! 물론 이 부분을 이미 극복했거나 초연한 목회자들도 있겠지만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이 땅에서 가정을 꾸려 살아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렇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 지독한 갈등과 고뇌의 현장에 태어나면서부터 선택의 여지없이 내동댕이쳐졌다. 좀 심한 말인가? 그리고 그 후유증과 부작용은 나를 목회의 길로 선뜻 들어서도록 용납하지 않았다. 물론 문제의 핵심은 오히려 돈이 아니라, 돈으로 인한 목사와 교인들의 인간관계에 있었다. 이것이 목사 아들로 태어난 나를 멋모르게 괴롭혔다.

 

다시 한 번 강조해 두고 싶다. 돈 때문에 괴로웠거나 갈등을 겪은 것이 아니라 돈으로 인한 목회자 가정과 교인들의 관계성 그리고 그에서 비롯된 인격과 내면세계의 상처 및 불신 때문에 정말 어려웠음을! 필자의 부친은 돈이라면 반드시 돌아가는 분이시고 돈을 돌보다 못한 것으로 보시는 분이다. 청렴과 강직, 청빈을 마치 인생의 대명사로 삼으셨다. 그래서 50년 목회 사역 중 단 한 번도 돈으로 인한 목회자의 영적 권위 및 지도력 훼손이나 교인들의 불신을 받은 적이 결코 없다. 이것은 우리 6남매의 공통된 증언이며 인정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가정생활을 책임진 어머니와 목사의 가정에서 자라야 하는 우리들이 대신(?) 생활고를 겪었으며, 이 과정에서 인간 안에 그리고 교인들에게도 숨어있는 죄성(罪性)의 무서움을 섬뜩할 정도로 많이 목격했다.

 


목사의 문제 그리고 목사와 교인 사이의 문제가 꼭 돈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한 부분임은 틀림없다. 이것은 거룩하고 진실하며 가난하게 사는 목사에게도 동일하다. 아니 차라리 타협하고 요구하며 챙기는 목사와 비교할 수 없는 내적 투쟁과 포기의 아픔(?)을 겪는다. 도대체 목사와 돈, 생활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성경의 원칙은 무엇인가? 필자는 이에 대해 긴 신학적 논리를 말하고 싶지 않다. 이미 그것들은 우리가 잘 아는 것이기에. 실제 목회자 가정에서 자랐으며, 나 또한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의 입장에서 개인의 경험을 중심으로 고백하듯 말하고 싶다.

 

우선 목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 점을 진지하게 근본부터 되돌아보자. 두 말할 것도 없이 목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산다. 이것을 우리는 목회 소명이라고 부른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각자의 삶과 사역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이것은 1차적인 구원 말고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 나라 및 그를 위한 사역으로의 부르심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목사는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상대적이지만 보다 중요한 소명을 받는다. 이것은 소명에 차별이 있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위한 하나님 자신의 주권이라는 관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목사는 돈과 물질 또한 의식주가 필요하지만 분명 소명으로 살아야 한다. 소명이 그 모든 것을 결정해야 한다. 이것은 일반 성도들보다 더욱 그렇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지도자로 부르시는 것은 아니며, 지도자만이 걸어야 할 희생과 대가, 고독의 길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목사에겐 먹고 사는 필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절대 아니다.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살기에 당연히 그에게도 동일한 필요가 있다. 그것이 공급되어야 삶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단순히 소명과 생활의 관계는 소명이 우선인데,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의 필요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둘의 관계가 실제론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이 둘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과 혼란은 소명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때론 영향을 미친다. 소명만을 좇으면 아니 다른 말로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정말 약속되었으며 실현 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아니 그렇다면 왜 현실에서 목사는 돈과 생활로 인한 소명의 갈등과 아픔을 경험하거나 덕이 되지 않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일까? 이 둘 사이에는 단순한 원칙이나 관계로 말할 수 없는 또 다른 다양하고 복잡한 요인들이 있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위의 커다란 원칙 위에서 목사의 돈 및 생활의 관계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최근 한국교회와 기독교계에서 목사의 문제 또는 타락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목사의 사례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에서 비롯된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다. 예를 들면 "목사도 세금을 내야 한다, 목사가 생활비 말고도 다양한 명목으로 엄청난 액수를 챙긴다, 목사도 근로자이다, 목사도 자비량으로 사역해야 한다." 등등. 물론 이런 주장이나 논의의 배경에는 일부 교회 목사의 탐욕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그런 목사들과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형태만 바뀐 또 하나의 잘못된 극단 아니면 비성경적인 논리라고 생각한다.

 


목사가 세금을 내야 된다거나 교회 안에 노조를 결성하는 일, 목사의 자비량 사역에 대한 주장들이 간과하고 있는 근본적인 오류가 있다. 즉 목사는 근로자가 아니며, 교회와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목사의 사역은 당연히 노동을 대가로 하는 근로 행위가 아니다.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기초로 교회 공동체를 통해 생활의 필요를 공급받지만 이것을 일반적인 근로 행위로 보는 것은 무지를 넘어 궤변과 성경에 나타난 목회자의 소명을 부인하는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물론 목사는 교회 공동체에서 생활비를 공급받지 못해도 또한 이 사역에 충성해야 한다. 또한 자비량 사역을 통해 물질을 공급받는 것도 일반적인 원칙이 아니다. 예외적인 상황에 지나지 않는다. 목회 사역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성경은 목회자가 교회 공동체를 통해 물질을 공급받음이 정상이고 당연하다고 분명 말하고 있다.

 

여기에서 갈등이 생긴다. 그렇다면 목사와 그 가족들은 의식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인가? 아니다. 그들도 당연히 사람이고 의식주가 있어야만 생명을 유지하며 생활해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원하는 심령과 사랑의 나눔에 기초한 생활의 필요를 채움 받도록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목사의 생활비는 근로를 대가로 하는 월급이 아니다. 근로행위이고 월급을 받으며, 교회와 고용관계로 본다면 첫 머리의 모든 주장들은 정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성경 그 어디에도 그런 주장이나 관점의 기록이 없다.

 

 

목사의 생활비는 목사란 직업이 하나님의 소명을 따라 일반적인 경제생활이나 수입이 없는 특성 때문 교회의 지체들이 갖는 자발적인 사랑의 나눔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문제는 이런 특성이 목사 자신들이나 교인들 모두에서 사라졌다는 슬픈 현실 때문이다. 일부 목회자는 마치 자신을 근로자나 월급쟁이처럼 여기며, 교인들 또한 목회자를 전문직에 종사하는 고용인처럼 여기고 있다. 여기에서 비롯된 문제가 바로 오늘 현실에서 보이는 목회자와 교회 사이의 사례(謝禮) 갈등이다.

 

성경의 정신으로 돌아간다면 목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은혜와 자발적인 사랑의 나눔을 통해 생활비를 공급받아야 마땅하다. 이것을 성도의 의무라고 성경은 말한다. 또한 목사는 반대의 경우 즉 교회에서 어떤 이유로든 생활비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불편이 있다 해도 그것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담대함과 자유함을 가지며, 오직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든 공급하실 수 있음을 믿고 사례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물론 성도들이 일반적인 수준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랑의 나눔을 갖지 않는 것은 직무 유기이며, 목회자의 목회 사역에 지장을 초래하는 비신앙의 모습이다. 목사는 덜 받으려는 자발적인 포기와 가난의 정신을 가져야 하며, 성도들은 더 나누려는 사랑의 풍성함과 성령 안에서의 유무상통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이런 상식이 무너지며 그것이 탐욕과 갈등 및 싸움이 되는 것은 불행한 현실이다. 심지어 일부 목회자들의 이런 현상이 사회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필자는 초기 교회 개척 시절에 교육전도사 3~4명과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공유, 공용, 포기와 나눔의 삶을 경험했었다. 그것은 큰 은총이었으며 목회의 강력한 자산이 되었다. 그 이후로 지속적으로 나눔의 차원에서 생활비를 생각해 왔다.

 

올해부턴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대로 교회에서 정규적으로 매월 받는 사례(생활비)를 완전히 받지 않기로 결정했고 지금껏 실천 중이다. 다만 일부 지체들이 자발적으로 매월 갖는 나눔의 헌금(교회에서 정규적으로 주었든 월 생활비의 20% 정도에 불과하지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자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생활은 더 어려워졌고 이로 인해 철저한 내핍과 절약 가운데 살고 있지만 목회자로서의 영적 권위와 담대함은 사역에 큰 힘이 되고 있다. 또 우리교회 공동체 안에서 모든 생활비가 공급되어야 마땅하지만 사도행전 방식으로 바꾼 다음에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까마귀를 통해 교회 외부에서 만족될 정도는 아니어도 공급되고 있어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성경이 말하는 목회자의 생활비에 대한 상호 관계의 상식이 지켜지면 모든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관계와 방식은 아마 이 세상의 지역교회에선 거의 실천 불가능한 이상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이 경우에 아무래도 지도자인 목회자들이 희생과 포기를 통해 주님의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필자 또한 마음이 아프며 가장과 남편, 아버지로서의 인간적인 부담과 미안함이 아내와 자녀들에게 있다. 그들까지도 이 결단과 희생에 동참할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할 권리나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자녀들은 이런 결단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신앙의 성숙함이 없는 나이이기에 더욱 그렇다. 자칫 잘못하면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또한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바울 사도의 말이 생각난다. '차라리 내가 죽을지언정'. 우리의 최후 보루가 하나님 앞에서의 신앙양심과 목회자로서의 사명의 길이라면 우리 또한 바울 사도의 바로 그 심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의 모든 영광은 적어도 이 땅에서는 아니니까. 비록 그 대가가 크다 해도 장래의 영광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내가 드릴 수 있는 최후의 기도는 일용할 최소한의 의식주를 채워주시며, 자녀들이 이 일로 신앙의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섬기며, 목회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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