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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2020.06.28 07:08

성경이 말하는 "완전"의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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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우리는 완전주의에 대하여 좀 더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난주 강조했던 주제는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정지된 상태의 도달할 수 있는 절대적인 완전함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계속적인 완전, 그래서 우리는 상대적 완전함(예수님 안에서) 속에서 절대적 완전함(그리스도)을 향해 자라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은 영원히 천국에 가서도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전주의의 착각은 성경의 완전함을 죄와 싸워서 이기는 완전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죄 없는 완전을 추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승리할 가능성도 매우 낮고 그 신앙도 매우 피곤하고 슬프게 할 뿐이다. 우리의 모델은 죄와 싸우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보다 더 진취적인 죄 가운데 빠진 죄인들을 향한 사랑을 펼치시는 그리스도다. 



내가 처음 학교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기를 배울 때 아버지는 자전거를 잡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다. “자전거를 타다가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놀라지 말고 먼저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그 보는 방향으로 핸들을 돌려라!” 물론 그 뒤로도 나는 자전거를 완전히 배울 때까지 여러 번 넘어졌지만 그때 아버지가 가르쳐준 비법은 정말 유용하고 우리 삶에 적용할만한 교훈이었다. 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죄와 맞닥치면 죄와 싸우려고 애쓰기 보다는 피하는 것이 낫다. 고개를 돌리고 핸들을 다른 방향으로 트는 것이다. 우리를 자주 넘어뜨리는 죄를 어떻게 연구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그분을 닮아 갈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죄의 문제는 극복되어 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마 5:48에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고 하셨다. 여기서 “온전”이라는 단어는 온전 혹은 완전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테레이오스(τέλειος)다. 사람들은 이 말을 착각하여 밑도 끝도 없는 하나님 같은 완전을 사모한다. 우리가 어떻게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말을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 구절과 같은 내용을 다루는 평행절인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 보면 된다. 그것은 누가복음에서 발견 되는데 누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눅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전 혹은 완전함이란 죄와 싸워 이기는 죄 없는 완전에 대한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안에서 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죄를 이기를 비결은 죄를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고개를 돌려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꼴 보기 싫은 원수와 싸우지 않으려고 원수 앞에서 “하나님 저 원수와 싸우지 않게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 보다는 그 원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피해 가는 게 훨씬 낫다.



성경이 말하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아가는 완전함이란 죄 없는 완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완전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실물교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분의 백성들 속에서 완전히 재현 될 때 그분은 당신의 것을 찾으려고 이 땅에 강림 하실 것”(실물69)이라는 구절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품성개발, 품성개발을 노래한다. 그런데 품성개발 노래를 부른다고 품성이 개발되는 사람들 보지 못했다. 

실체도 없는 품성 개발은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재현은 죄 없는 완전과 같은 그런 말도 아니다. 문맥에서 강조하는 것은 성경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성육신적인 사랑과 봉사에 있다.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온전함 삶을 사는 것이다. 마19:21절에도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죄와 싸워서 이기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런 완전함, 그것은 완전에 대한 완전한 착각이라는 사실은 빨리 깨달을수록 그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다.



완전주의의 강박관념



신 18:13.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는 기별은 성경이 줄곧 주장하고 강조하는 기별이다. 예수께서도 이와 비슷한 기별을 주셨다.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성경은 줄곧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완전하라” 혹은 “온전하라”고 명령한다. 이 명령 혹은 가르침은 하나님이 수행 불가능한 명령을 말씀 하신 것이 아니라 충분히 가능한 명령이라는 사실로 우리는 이해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완전(온전)할 수 있고 또한 죄를 이길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롬 8:37에서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고 천명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완전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도달할 수 있는 어떤 상태적인 완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은 정지된 상태의 절대적인 완전함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다이나믹(Dynamic)한 완전이다. 우리는 하늘나라 가서도 계속 영적으로 지적으로 자라날 것이다. 영원이라는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그분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그분을 더 닮고 싶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절대적인 상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완전한 것이 아닌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다고 인정된다. 



성경은 노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창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여기서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한 “완전”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하라고 명령하실 때 하신 그 완전(타밈)과 같은 단어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의 개념은 상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신실함” “온전함” “정직함”과 같이 계속적이고 방향적인 의미에서의 완전함을 말한다.



물론 노아는 그 후에 술에 취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신실하려고 노력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완전 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지 않았는가? 



(히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히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요즘말로 한다면 그분은 아빠찬스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분의 신성의 능력이 아닌 온전한 인성으로 고난을 견디셨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지하심으로 모든 시험에서 승리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히브리서 기자는 “아들이면서도”라고 하심으로 그분의 하나님 아들 되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분에게는 무한한 능력이 있고 어떤 것으로부터 빌려오지 않은 절대적 생명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을 감내하심으로 모든 자들을 도울 수 있는 구원의 근원이 되셨음을 강조한다.

어떤 힘없는 사람이 친구들 앞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면서 “내가 참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것은 참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진짜 참는 것은 응징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의 받으신 시험은 우리의 것과는 다른 면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단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할 때 거기서 내려 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과 순종은 이 세상 그 어떤 인간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험이다. 그것은 순결하고 죄 없는 분이 자신을 죄인들을 위하여 죄 자체가 되도록 내어주는 자기희생의 시험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그분이 겪으신 시험을 경험할 수 없다. 예수님이 우리와 모든 면에서 똑 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큰 시험을 겪으셨고 그렇기 때문에 능히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대 제사장이 되신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완전의 개념은 정지된 상태의 “상태적인 완전”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매우 역동적인 완전이다. 완전주의자들의 착각은 자신들이 도달할 수 있는 어느 지점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우리는 하늘에 가서도 영원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을 닮아가고 자라갈 것이다. 우리는 완전함 가운데 완전함을 향해 자라간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완전의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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