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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4 20:09

감각이 없는 재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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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에 대해 회교도들은 열정적이지만 기독교 신자들은 오히려 '냉랭'한 편이란 주장이 나왔다.

친 이스라엘계 사역체 올리브트리미니스트리(OTM)잰 마켈 창설자/대표는 최근 대다수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에 대해

무관심한 반면 무슬림들은 '이슬람 메시아'의 재림을 열렬히 믿고 사모하는 현상이 매우 대조적이라고 논평했다.

교회는 예배 이벤트에 초점을 기울이고 있으며 확실히 다들 지상사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고 빗대어서 말을 했다.

기독교에 재림이 없다면 미신종교나 다름없다.

기독교인이 재림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를 듣고 있다.


나도 재림을 믿었기 때문에 재림교인이 되었다.

그런데 재림교인이 된지 20년이 넘었지만 교회에서 예수 재림에 대해 열렬히 사모하게 하는 절박한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다.

더 솔직히 말한다면 지금까지 설교하는 목사님들에게서 예수재림의 삶을 보지 못했다.


예수재림에 대한 절박한 소망을 성경과 예언의 신을 통해서 깨달았다.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재림을 막연히 영광스럽고 찬란한 것으로 상상한다.

그냥 이대로 살다가 재림을 맞이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까닭에 재림에 대한 갈망 그리고 재림을 준비하는 절박함이 없다.


과거에는 재림을 기다리기 위해서 준비도 하였고, 시골생활을 떠났다고 말한다.

밀러의 재림운동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랬다. 그 날짜에 주님께서 오시는 줄 알고 재림의 신앙을 믿었다.

그러나 밀러가 정한  날짜에 주님이 오시지 않자 실망하고 재림의 믿음을 다 버렸다.


그들은 진심으로 재림을 믿지 않았다. 그 날에 재림이 없자 다시 세상으로 돌아갔다.

그 날에 혹시 진짜 오시면 어떻게 하지! 재림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 교파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교회에서 받대와 재림운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이름까지 제명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세상과 재림의 양다리를 걸쳤던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의 징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하늘과 바다와 땅과 종교적으로 죄악이 관영 하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도 재림이 속히 오실 수도 있고, 지체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양다리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분들이 계신다.


모든 징조가 성취된 것을 보고, 마지막 때라고 말은 하면서 참으로 변화되고 준비된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에

나도 그 무리에 속해버린다. 재림을 믿는 사람들에게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는 모습이 보인다.

또 이러다가 다시 지체될 수도 있겠지.


예수님은 언젠가는 오신다. 그러나 지금은 시기적으로 아니다 라고 체념한다.

재림에 대한 설교와 재림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모으는 모습이  교회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다.

세상의 안락에 깊이 젖어 있어, 아무도 재림이 가깝다고 뭔가 신빙성 있게 행동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 위급한 상황이면 대 총회나 목사님들이 미리 알려주겠지! 그들이 먼저 행동하겠지.

모든 일을 조직에 떠맡겨 버린다. 신랑이 오기를 기다리던 열 처녀들이 모두 졸며 자는 때에, 나 자신은 이래서는 안 되는데,

무언가 변화와 개혁을 시도해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에 뼈가 오래 굳어서 마음과 몸이 말을 잘 안 듣는다.


교회는 그저 귀에 좋은 설교 여러분~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 여러분의 소원과 근심 걱정을 모두 아뢰십시오.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질병을 알고 계십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 아뢰십시오.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해 주시고, 그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현대교회가 외치고 있는 축복의 설교들이다.

성도들을 변하지 않도록 잠재우고, 믿음을 잃게 하는 온갖 오류로 우리를 부패하게 만들고 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며 이런 일이 일어나거든 주의 재림이 가까운 줄 알라고 말씀하시며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하늘 지성소에서 우리의 죄를 도말하기 위해서 탄원하고 계시는 것을 알면서도 교회는 교인들의 죄가 도말 될 수 있도록

깊은 회개를 설교하지 않는다. 죄와 타협하고, 혹시나 자신에게 분리한 일이 일어날까 좋은 말과 칭찬만 한다.

일곱 교회 중 라오디게아 교회는 칭찬이 전혀 없는 교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시는 기별은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지도자)들에게 주신 기별이다.


그만큼 마지막 교회의 책임이 막중하다.

내 죄가 도말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죄의 도말은 대속죄 일과 직결되는 일이며 마지막 세대의 남은 백성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느냐 마느냐가 결정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경험이다.


대 속죄 일에 죄를 조사하고 심판하는 일이 없이는 죄의 도말이 있을 수 없고, 죄의 도말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죄의 역사를

끝내실 수 없으시다. 이것은 지도자들이 욕을 얻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크게 외쳐야 하는

마지막 정결사업이다.


크게 외치라. 아끼지 말라. 네 목소리를 나팔같이 날려 내 백성에게 그 허물을, 야곱 집에 그 죄를 고하라

(이사야 58:1-14). 그런데 교회는 일상적인 설교와 형식적인 예배, 목자가 양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재림을 갈망하는 사람, 시골 생활하는 사람들을 현실도피주의자로 몰아 부치고, 재림을 준비하는 일에 동요가 일어나 교회의 재정에

손실이 생길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기까지 한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재림을 늦추신다고 이야기 한다.

오늘날 교회는 크고 부유해졌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자신의 이기적인 축복을 충족시켜 주는 곳으로 위로를 삼는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죽어가고 있는 우리의 육신적인 것에 전적으로 매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이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이 멸망하는 것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재림은 더 이상 회개할 사람도 구원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재림하신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면서 교회를 끌고 가고 있다.


교인을 고객으로 생각하며 돈이 많고 직업이 빵빵 하면 좋은 고객으로 모시고 그렇지 않는 고객은 관심도 갖지 않는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학대하는 사람을 가장 싫어하신다. 그런데 교회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는 지도자들 보다 평신도들이 더 잘 알고 있다

듣는 귀와 눈이 똑똑해졌다. 더 이상 교회가 자신의 믿음과 구원을 보장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쓰러져 가는 교회, 타락하는 교회, 믿음이 떠난 교회를 향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헌신하며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진실한 장로님들이 계신다.

자신이 여전히 교회에 존경 받을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지도자를 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고 있는 진실한 성도들이 있다.

교회에서 여전히 오실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께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림의 기별만큼은 우리 재림교회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외쳐야 할 기별이다.

재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황홀한 상태에서 슬쩍 공중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그런 기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야 할 환경은 어떤 환경일까. 그 환경에서 설 준비가 되었을까.  


(재림을 맞이 할 환경)


"우리 앞에 있는 고난과 고통의 시대에 우리에게 피로와 지연과 주림에 견딜 수 있는 믿음,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지라도 쇠약해지지 아니할 믿음이 필요하다.

개국 이래로 없던 환난의 때가 곧 우리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경험 즉 사람들이 얻기를 너무도 게을리하고 있는 한가지 경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실지로 당한 환난이 가벼운 것이 상례이지만 우리 앞에 있는 위기는 그렇지 않다.

가장 자세하게 묘사하여도 그 시련의 크기를 여실하게 표현할 수 없다.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16:18).

하늘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 같고, 산들은 마치 바람에 불리는 갈대같이 흔들리고 거칠은 바위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며,

땅은 바다의 물결처럼 아래 위로 요동하며 그 표면은 파괴된다. 땅의 기초 자체가 무너져 버리는 것 같다.


산맥들은 가라앉고, 사람들이 거하는 섬들은 자취 없이 사라진다.

항구들은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간다. 한 덩어리가 백 근쯤 되는 큰 우박이 쏟아져 파괴하는 일을 한다."

엘렌지 화잇은 그 때를 회상하며 실로 두려운 순간이었다.

이 엄숙한 사건에 대한 장면은 어떤 언어로도 묘사할 수가 없다라고 告白한다.


"그리고 그 두려운 광경들이 사라지자 크고 흰구름이 나타났다.

무거운 먹장 구름들이 일어나 서로 맞부딪치고 대기층이 갈라져 밀려나간다"(각시대의 대쟁투).

마지막 시대에 우리가 겪게 될 환경은 바로 이러한 환경이다.


누릴 것 누리고, 할 것 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재앙을 피하게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은 성경적이 아니다.

마지막 시대는 우리 스스로의 믿음으로 싸우고 투쟁해야 할 환경이다.

편안하게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약시대에도 없었고, 신약시대에도 없었으며 우리시대에도 없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어려운 시험과 환난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사단은 구원받을 사람들을 결코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도록 가만히 놔 두지를 않는다.

지금 내 삶이 안락하고 편안하고 아무런 시험과 환난이 없고 좋은 차와 좋은 집에서 누릴 것 다 누리면서 평탄대대로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것은 구원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자기 자신이 구원받을 사람인지, 아닌지는 자신의 삶이 말해 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없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만약에 앞으로 큰 환난이 오면 하나님께서 환난 전에 미리 잠재워 주실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킨다.


하나님께서 미리 잠재울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들 역시 환난과 핍박과 고통에서 저들의 믿음의 시험을 견디고, 통과한 자들이다.



(환난 전에 누가 미리 잘까)


"조건 없는 치유를 위하여 간구하는 것이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다.

그분은 탄원의 대상이 되어 있는 자들이 만일 살아 있다면 그들에게 닥쳐올 시련과 시험을 견딜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를

아신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신다.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에 다가올 환난 때의 격렬한 시련이 있기 전에 잠들어 눕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환난의 때 이전에 많은 어린아이들을 미리 잠재우신다.


물론 하나님께서 노약자나 병자, 장애자들도 그분의 은혜 안에 미리 잠재우실 것이다.

그러나 이기적으로 큰 환난이 두려워하는 자들과 자기가 당할 시험을 피하기 위해서 미리 잠재우시지는 않으실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살아서 구원 못 받으면 죽어서 구원받겠지라고 생각한다면 아래 글을 참고해 보자.

 

(죽어서 구원받을 자들)


죽어서 구원받을 사람들은 비싼 집이나 화려한 무덤이나 편안한 장소에서 나오는 자들이 아니다.

좋은 자동차와 파티에서 나오는 자들이 아니다.

죽어서 구원받는 사람들은 자기가 죽었던 장소와 무덤에서 부활한다. 죽기 전에 자신의 품성과 이기심, 탐욕 그대로 부활한다.


그들은 바위나 동굴에서, 감옥에서 땅속 굴에서, 깊은 물 속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땅이 흔들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 소리가 요란한 중에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자는 성도들을 불러일으킨다.

주님께서 의인들의 무덤을 보시고 당신의 손을 하늘에 향하여 드시고 깨어라, 깨어라, 깨어라, 티끌에 가운데서 자는 자여,

일어나라!”고 외치신다.


이 땅의 어느 곳에서나 죽은 자들이 그 음성을 듣게 될 것이며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날 것이다.

주님 앞에서 하늘은 두루마리처럼 함께 말리고 땅은 진동한다.

그리고 모든 산과 섬들은 제자리에서 옮겨진다.


구름들이 두루마리처럼 말려가기 시작하자 밝고 선명한 인자의 징조가 나타난다.

음악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무덤들이 열리고 죽은 자들이 일어난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맨 마지막에 죽은 성도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와

영생의 생명을 얻는다


땅이 흔들리고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 소리가 요란한 중에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자는 성도들을 불러 일으킨다.

주님께서 깨어나, 깨어라, 깨어라, 티끌 가운에서 자는 자여, 일어나라!”고 외치신다.

이 때에 온 세상에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 중에서 부활한 큰 무리의 소음이 일어날 것이다.

무덤은 열리고 땅의 티끌 가운에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난다(시대의 소망, 각 시대의 대쟁투).


나는 오래 전에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서 구원받을 144.000인에 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 구원을 지킬수 있을지 두려워 하고 있다. 내 믿음과 품성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누가 살아서 구원받을까.


(살아서 구원받을 144.000)


살아서 구원 받을 사람들은 말 그대로 상상을 초월하는 환난을 통과할 자들이다.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 때가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까지 견딘 자들이며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 자들이다.

이들은 재림하시기 전, 지구의 그 두려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한 자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재림 때까지 살아남아서 악인들로부터 모진 고통과 핍박과 고난에서 나온 자들이다.

그들이 피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단의 군대와 악인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날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환락과 승리의 기쁨에 빠져 있을 대 가장 큰 천둥 소리가 울리게 된다.

하나님의 음성이 발하실 때 하늘이 캄캄해지고 하늘에서 나오는 불꽃 같은 빛과 무서운 영광만이 빛을 비출 것이다.

땅의 기초가 흔들리고 건물들은 기우뚱거리며 무섭게 부딪쳐 무너질 것이다.

바다는 냄비처럼 끓고, 온 땅에는 무서운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간의 법률상 보호가 제거되면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죽이고자 하는 운동이 일제히 일어날 것이다.

법령으로 정해진 기간이 가까워 오면 사람들은 그 미운 종교 단체를 근절하고자 공모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룻밤 사이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해서 반대와 책망의 소리를 완전히 침묵시켜 비리고자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옥중에서 혹은 산림과 산중의 적막한 곳에 숨어서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를 탄원한다.

승리와 조소와 저주의 함성을 지르면서 악인들의 무리가 그들의 노획물에게 달려들려 할 때 밤의 어둠보다 더욱 짙은

암흑이 온 땅을 덮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능력을 나타내시는 때는 한밤중이다.

하늘의 험악한 광경가운데서 한 공간이 나타난다. 거기서 되었다”(16:17)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그 음성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킨다

살아서 구원받을 사람들은 그야말로 웬만한 강 심장(믿음)이 아니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굴과 굴과 감옥에서 구원을 받을 자들이다.

산중의 요새에서, 땅의 동굴과 굴속에서 구주께서는 당신의 임재와 영광을 나타내신다.

그분의 백성의 슬픔과 고통이 있는 곳에 그리스도의 동정이 미치지 않는 수도 없다.

하나님의 후사들은 다락방, 오막살이, 감옥, 단두대, , 사막, 지하 동굴, 해저 동굴 등에서 나온 자들이다.

이들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인 외에 아무도 배울 수 없는 노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체험의 노래, 곧 다른 어떤 사람도 체험하지 못한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다.

또한 이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어 하나님의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 자들이다.

이 큰 환난이 저들을 삼키려고 할 때 동쪽에서 검은 구름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그것이 인자의 오심을 깨닫는다.

구름이 땅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점점 밝아지고 영광스럽게 되어 마침내 커다란 흰 구름이 되어

그 아래는 광명한 빛이 있고 그 위에는 언약이 무지개가 있다.

거룩한 천사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늘의 노래를 부르면서 그분의 길에 수행한다.

하늘은 찬란한 천 천만만의 천사들로 충만해진 것 같다.

그 광경은 사람의 붓으로 묘사할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 그 찬란한 모습을 가히 상상할 수 없다.

그 때에 오리온 성좌의 열린 공간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흘러나온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짜와 시간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그 음성이 큰 천둥 치는 것처럼 세상을 진동시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이 오시는 날과 시간을 알려주실 때 많은 물소리와 같은 그 음성을 십사만 사천명만 그 소리를 알아듣고,

나머지는 그 소리를 뇌성과 지진이라고 생각한다.만 왕이 왕께서는 불꽃에 싸여 구름을 타고 내려오신다(각시대의 대쟁투).

144.000인은 중보자 없이 사단 앞에서 예수님의 품성을 대신하는 사람들이다.

144.000인은 중보자 없이 온 우주 앞에 예수님을 증명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완전하게 승리할 자들이다.

그들이 바로 짐승과 그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자들이이기 때문이다.

사단의 참소를 영원히 침묵시키게 할 자들. 그들이 6천년동안 쏟아 부었던 악과 저주와 온갖 타락한 곳에서 사단의 마지막

고소를 온 우주 앞에 침묵하게 해 줄 것이다. 


(잃어버림을 당하는 자들)

 

인생의 큰 싸움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들은 무서운 각성을 할 것이다. 일생동안 얻은 것이 잠깐 동안에 사라진다.

부한 자들은 그들의 거대한 저택이 파괴되고 금과 은이 흩어지는 것을 보고 통곡한다(각시대의 대쟁투).


나는 이번에 중국에서 73일 돌아와 지금까지 70시간이 넘게 운전하면서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길 눈이 어두운 나는 목적지를 향해 오로지 GPS만 의지하며 길을 찾아갔다.

 때로는 길을 놓쳐 길이 더 멀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였다.

가다가 방향이 다르면 GPS는 유턴하라고 명령한다. 고집스럽게 유턴을 하지 않고 가라는 방향대로 가지 않으면

GPS는 먼 길을 돌아가게 할 망정 다시 새로운 길을 알려주었다.

GPS가 인도해 준 고속도로가 Close가 될 때가 있다.

GPS가 다른 길로 인도해 주겠지 믿고, 한참 가다 싶으면 GPS는 다시 똑 같은 Close 된 그 길로 나를 계속해서 인도해준다.

여러 번 시도 끝에 그 길을 빠져 나오면 한 시간이상 걸렸다.

결국 GPS가 없었다면 나는 아무 곳도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사막에서 길을 잘못 잃으면 큰 낭패를 당한다.

처음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길을 찾아보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패로 끝나게 된다.

왜냐하면 사막에서는 하룻밤만 지나도 바람의 영향으로 모래언덕의 지형이 바뀌기 때문이다.

어제 보았던 기억으로 길을 찾으면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지식과 경륜으로 길을 찾다 보면 오히려 길을 잃어버린다.

사막에서 길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늘의 별 ‘북극성’을 바라보면 모든 별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지만 ‘북극성’은 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길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하늘 가는 길은 GPS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

기계를 통해서도 사람을 통해서도 하늘 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길을 잃어버리듯이 우리에게도 잃어버린 시간이 있다.

지난 내 삶과 인생의 기회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에 대한 관계들..

북극성처럼 늘 변함없는 예수님을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의 잃어버린 구원의 시간들을 확실하게 찾아주실 것이다.


글 주디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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