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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부
2016.06.30 16:51

전도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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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롬1:16

여러분들! 전도하라는 말씀을 들으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많은 분들이 “잘 안 된다,” “쑥스럽다,” “두렵다,” “해야 할 줄 알면서 못하니 부담 된다”는 등의 대답을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왜 두려움이 드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너나 잘 믿어, 네 행실이나 바로 해”라는 얘기가 곧 나올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는 것입니다. 참 솔직한 얘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열거한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하나로 정리할 수 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사도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른 삶이 있다고 도전을 해오고 있습니다. 자신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복음을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전도가 어렵다는 생각이 변화되고, “이제는 복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나도 기쁘게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구원이 무엇입니까? 구원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건져 주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부릅니다. 영적인 이치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건져주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능력입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것은 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는 능력입니다. 이 엄청난 능력을 깨달은 사람이 어찌 복음을 증거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나의 소심함도 나의 두려움도 이 선언 앞에서는 다 물러가지 않습니까? 나만 조금 더 용기를 내면 한 영혼이 멸망할 이 땅에서 천국으로 옮겨지는데, 나만 좀더 부지런하면 방황하던 심령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데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또, 우리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예수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하신 일이 복음 증거의 사명이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에 예수께서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도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낮고 천한 땅에 오신 이유도 전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가복음 4장 43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뚜렷하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승천하시면서 성령을 보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절과 8절에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 하신 것을 기다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과 같이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다와 같이 우리의 친척, 혹은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마리아와 같이 내가 미워하는 사람, 혹은 나의 원수에게도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땅 끝, 곧 내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 혹은 가보지 못한 곳의 사람들에게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5장 19절에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이 해야 할 사명이 화목하게 하는 직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무엇을 증거 할 것인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증거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을 해 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는 것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이 복음의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증거 하는 것은 어떤 이론이나 제도가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네 가지 단계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단계: “하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당신을 향한 풍성한 삶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생명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예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묻습니다. 여러분은 풍성한 삶을 누리고 계십니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기쁨보다는 고통과 한숨이, 사랑보다는 질투와 분냄이 더 많지 않습니까?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한국 교포들도 이제 퀸즈 지방 법원에 이혼 소송하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는 기사를 읽고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과연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산다면 이러한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이 계획하신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두 번째 단계로 들어갑니다.

두 번째 단계: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로봇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의지를 따라 무엇을 할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선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불행히도 순종보다는 불순종을 선택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결국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분리시키고야 말았습니다. 이 잘못된 선택을 성경을 죄라고 부릅니다. 일을 하면 대가를 받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주급이나 월급이라고 부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지으면 대가가 있습니다. 이 대가는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에덴동산의 평화를 깨버렸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가 경험했던 것처럼 불안과 수치와 두려움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이 허탈과 탄식과 외로움과 눈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 2).
오늘도 우리 가정들에 이 죄가 들어와서 부부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형제 자매 사이에 평화가 깨어지고, 수치와 불안과 쓰라린 상처가 있습니다. 죽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인생에 흉년이 듭니다. 구약의 엘리야 선지자 시대를 보십시요. 하나님을 떠난 나라에 삼년 육 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각히 흉년이 들지 않았습니까? 경제적 흉년, 건강의 흉년, 애정의 흉년이듭니다. 죽음의 공포가 심령을 사로잡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벗어나 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합니다. 술을 마셔보고, 도박이나 마약에도 빠져보고, 육체적 정욕에도 몸을 던져 봅니다. 그러나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더욱 갈증만 더해 갑니다. 때론 선행으로, 혹은 종교적인 행위로 이것을 벗어나 보려고 합니다만 하나님과의 분리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세 번째 단계: “하나님의 해결책은 십자가입니다.”
이런 우리를 사랑의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치료해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벌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18절에 “그리스도께서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였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의인이십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같은 분이십니다. 그러나 죄지은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흠이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시키셨다고 이사야 53장은 말씀하십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도살장으로 가는 어린양처럼 한 말씀 하시지 않고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기 위하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여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가 대신 찔리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상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로와 지고 우리는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치료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행 4:12). 이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게 됩니다(요 5:24). 이것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해 보여주신 그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롬 5:8).

네 번째 단계: “내가 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복음의 세 단계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자유의지로 불순종을 선택하여 죄를 짓고,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짐, 병마의 짐, 가난의 짐, 죽음의 짐 등 무거운 짐들을 지고 허덕이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이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단계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다시 갈 수가 있게 되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질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네 번째 단계는 이 복된 소식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수도꼭지는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습니다. 틀기만 하면 물이 쏟아집니다. 영생의 물이 우리에게 가까이 있습니다. 틀면 됩니다. 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동행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문을 두드리는 그림을 보셨습니까? 거기에는 바깥에 문고리가 없습니다. 안에 문고리가 있습니다. 문고리는 내가 갖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가 그 문을 열면 주님께서 들어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면 주님 안에 생명이 있으므로 그 생명이 내게도 있게 되어 집니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영생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요일 5:11-13). 여러분들 집에 소포가 옵니다. 소포가 왔을 때 여러분들이 그 소포에 싸인을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것이 되어집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소포에 싸인을 하지 않으면 우체부는 그냥 가지고 갈 것입니다.

영생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구원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내 죄를 씻어주시고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습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웬 말입니까 웬 은혜입니까?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십자가 지시고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주님께서 살 찢기시고 피 흘리셨습니다. 이 웬 은혜입니까 이 웬 사랑입니까? 오 주님 감사합니다. 내가 마음의 문을 엽니다. 내가 주님을 영접합니다. 이제 내 마음속에 들어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옵소서.” 우리가 이렇게 싸인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는 영생의 사람 우리는 천국백성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9절과 10절에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이처럼 귀한 일입니다.

3. 어떻게 증거 해야 할 것인가?
첫 번째는 사명으로 증거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은 억지로 하면 힘듭니다. 전도도 교회에서 하라니까 하기는 해야 하는데 잘 안되고, 이것을 한 행사나 프로그램으로 생각하면 전도는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갈 때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하고 있는 일을 즐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담된다는 생각, 막연히 안 하면 안 되는 일이란 개념을 버리고 복음전파는 나의 생명을 걸고 내가 이 일을 감당해도 아깝지 않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귀한 소명이라고 생각 할 때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복음은 듣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교회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그것 때문에 오셨고 주님께서 그 일을 분부해 주셨고 성령으로 오셔서 성령의 충만 받아 이일을 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믿음으로 뿌려야 합니다.
시편 126편 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씀 해 주셨습니다. 눈물로 우리가 씨를 뿌리면 당장은 씨앗이 자라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입니다(갈 6:9).


태신자들이란 우리 마음속에 전도할 사람들을 작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 우리에게 기쁨이 옵니다. 여러분 어느 가정에 아이가 잉태되면 그 남편 된 사람이 좋아서 기뻐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되신 분들이 다 기뻐하게 됩니다. 교회에 태신자가 잉태되면 그전까지 기도하지 않았다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말씀을 읽지 않던 사람들이 태신자를 잉태하면서부터 말씀을 읽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잉태하고는 좋은 것을 읽고 좋은 것을 들어야 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습니다.

잉태하면 함부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또,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내가 전도할 사람이 내 말로 시험들면 그에게 천국문 닫히는데, 내 행동으로 그가 시험 들면 내가 뿌려 놓은 씨앗이 그만 없어져 버릴텐데 말과 행동에 조심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랑을 베풀기 시작합니다. 친절을 베풀게 되어집니다. 힘들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필요할 때 또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결국은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우리 성도의 신앙을 건강하게 자라게 하는 일입니다.

성장하는 신앙은 전도의 기쁨에서 옵니다. 그렇게 해서 애타게 기도하고 물주고 전화하고 기회를 기다리며 복음을 전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전화해서 “나 예수 믿을래 나 예수 믿고 나도 구원 얻고 천국갈래” 눈물 흘리면서 고백할 때에 그때에 그 자리에 눈물 흘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어떤 성도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전도를 하러 나갈 때는 오늘은 누구를 만나서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는데 막상 나가서 전하면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사람을 만난 다는 것입니다. 비 오는 날은 가지 말까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그래도 주님 예비해 놓으신 사람이 있는데 하고 복음을 증거 하면 영접기도까지 죽 들어가게 사람들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주장하신 다는 것입니다. 그때 돌아오는 발걸음은 걸어오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의 체험입니다. 이 신앙의 체험을 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이 무엇인데 나 같은 것을 인하여서도 저 생명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시는가하는 놀라운 확신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서 18절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침례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복음을 증거 하는 교회와 복음을 증거 하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는 전도를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이제는 전도의 기쁨을 이 말씀을 통하여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왜,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전파할까를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 증거 하는 교회와 성도들과 함께 하십니다. 인간의 부족과 연약함을 그의 축복과 능력으로 채우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계에 드러내는 도구들로 존귀하게 사용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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