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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전도법(복음이냐 교리냐)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위의 성경말씀은 세상 끝”(3)이 언제일지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그 징조의 일부로 주신 말씀입니다.

 이 천국 복음(this gospel of kingdom)"의 내용은 주님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신 생활과 일상에서 가르치신 내용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분의 가르침과 행적은 매우 단순했고, 또 누구든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의 말씀과 행동은 듣고 보는 사람들에게 그 즉시 복된 소식-기쁜 소식 , 복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부분이 우리 주님께서

당시 서기관(율법사)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다르셨던 이유입니다(7:28참조).

 반면에,

서기관(율법사)들이나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11:28-30 ; 15:1-8 참조).

 

그러면 주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 동안 나눠주신 복음, 혹은 전도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 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4:18,19).

 

주님이 주시는 복음(좋은 소식-good news)에도 2중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현실적 부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spiritual)부분입니다.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면서 동시에 죄로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경우입니다.

세상에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만,

그런데 우리 주님이 주시는 좋은 소식-기쁜 소식은 그 소식을 받은 사람이 반드시 주님을 만나게 되고 또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경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수많은 사건들이 있습니다만 그중 몇 경우를 살펴보면,

 

I. 시몬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심(5:1-11) - 주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4)고 하셔서 베드로가 그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 고기를 에운(caught)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6)”지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I am a sinful man)"(8)라는 간증을 통해 그 즉시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영접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몬과 그의 동료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11)게 되고 마침내 예수님의 제자들이 됩니다.

 

II. 소경이 눈을 뜨다 (9:1-41) -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1).

 

이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6,7).

그 후

소경의 눈을 보게 한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느라 바리새인들이 벌인 소동이야기가 요한복음 9 1절로 41절까지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를 (다시)만나사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35-38).

이 소경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눈도 뜨게 되고 또한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III. 세리 장(삭개오) -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은 직업이 세리 장(chief of tax collector)이었고, 재산이 많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예수님이 그 동네를 지나가시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삭개오에게 예수님을 뵙고 싶은 마음과 생각이 매우 강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키가 워낙 남달리 작았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릴 걸 예상하면서 인근 뽕나무 위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무 위에 올라 점점 가까이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는 그 순간 인류의 메시야께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고 계심을 목도 하며 매우 흥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는 동안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 하겠다”(5)고 하십니다.

그러자 삭개오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나무에서

급히 내려와 즐거워(gladly)하며 영접하거늘”(6)...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집에 도착한 삭개오는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cheated)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8)라는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뒤이어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9) 하는 놀랍고도 기쁜 소식,  복음을 접하게 됩니다.

 

이상의 세 경우에서 우리는 주님의 개인전도 내지 영혼 구원하는 전도방법의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우리 주님께서는 교리나 신조 같은 내용이 전혀 없으신 전도내용을 가지고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면 교리나 신조는 무엇일까요?

교리(敎理-doctrine)는 체계화된 종교의 본질적인 가르침을 뜻한다. 대부분의 종교는 각자 독자적인 교리를 채택하고 있다. 교리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믿음의 근거와 가치 판단의 기준을 제공한다 교리에 대한 위키 백과는 정의합니다.

 

본 교단에도 교리라는 말 대신 신조(beliefs)”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28개 신조(The 28 fundamental beliefs)" 1980년 당시 대총회에서 27개조로 출발하였다가 2005년 하나 더 첨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재림교인이 되던 당시에는 그런 숫자에 묶인 신조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의 신조들을 근간으로 한 성서적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면,

교리(신조)” 복음과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교리(신조)는 성경의 핵심적인 내용들입니다. 예를 들면, 창조론, 삼위(아버지, 아들, 성령 하나님)일체론, 인성론, 사망과 부활, 십계명, 그리고 재림교회의 특유인 안식일 계명, 등등의 성경 중요내용들을 대부분의 기독교 교단들이 각 교단의 특성에 맞게 설정한 가르침의 요약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구원의 소식 혹은 복음에는 교리(신조)가 거의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를 부르실 때나, 소경을 치료하실 때, 그리고 삭개오를 만나 구원의 소식을 전하실 때 예수님은 교리(신조)를 가르치거나 전하려고도 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대신, 예수님은

(I) 베드로에게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말씀과

(II) 눈 먼 소경에게 -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는 말씀과

(III) 삭새오에게 -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 하겠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세 사람에게 전혀 다른 내용의 말씀이었지만, 그러나 세 사람 모두 복음(좋은 소식-기쁜 소식)“을 접했던 것입니다.

 

교리(신조)를 중심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필요한 형편에 맞춘 좋은 소식의 대화를 나누셨기 때문에, 전도의 결과는 100% 였다고 생각합니다.

 

4복음서에 나오는 인물들, 마태를 비롯한 12제자, 로마 백부장, 12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하던 여인, 주인의 밥상 부스러기를 먹는 개로 자신을 비유한 여인, 야곱의 우물가에서 물 긷던 여인, 니고데모, 등등...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섬기게 된 기별은 교리(신조)가 아니고, 개개인에게 적합한 단순하고도 감동적인 복음에 의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자들이 세운 초대교회에도 교리(신조)는 없었습니다. 우리 재림교회도 근 100년이 넘은 후에 만들어졌고, 아마도 교회 혹은 교단이 교리(신조)를 만들게 된 동기는 대체적으로 교세가 점점 더 확장되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 혹은 단체가 딛고 있는 기초가 무엇인가를 확립하여 교인들 혹은 교단이 흔들림 없이 전진하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은 교리를 일종의 울타리에 비유하며 신앙의 안전과 올바른 안내를 유도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14: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가운데로 인도 ...(16:13)”해 주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시는 분은 교리나 신조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하나님이시랍니다!

 

그래서

저는 교리(신조)를 마치 우리 집에 설계된 전기배선에 비유하길 좋아합니다. 현대가정에서 컴퓨터, 냉장고, TV, 그리고 스마트폰, 등등의 가전제품을 집안 구석구석에서 사용하려면, 아예 집 설계 때부터 전기배선의 위치와 용량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사용할 가전제품을 위해 아무리 배선을 잘했다 하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위치를 올렸을 때 전류(electric current)"가 흘러야 가전제품들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우리가 믿는 교리(신조)에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에너지(the energy of Spirit)" ,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어야만 가르치는 내용들이 복된 소식, 좋은 소식으로 ()“하게 된다는 생각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성령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설명하다 보니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

 

한편,

모든 성경말씀을 포함해 모든 목사님들의 설교, 그 밖의 모든 신앙적 글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성령 하나님의 energy”가 들어 있어야만 그 메시지를 읽거나 듣는 사람에게 참된 복음이 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성령 하나님의 energy”

들어 있지 않은 교리(신조)나 가르침은 자칫 무거운 멍에나 짐”(11:28-30참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글 Changmyou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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