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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부
2020.08.16 06:29

믿음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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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사실 이 질문은 소위 구원파로 알려진 자들이 기독교인들을

미혹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까”라는 구원파의 질문 앞에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정쩡하게 대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틈을 노려 구원파들은 기독교인들을 미혹하게 됩니다.

‘평생 교회 다녔어도 구원 받은 것도 몰랐으니 그동안 당신은

예수 헛 믿었다’고 하면서 그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있다면 바로 구원일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근원적인 목적이 있다면 구원일 것입니다.

구원이 없는 예수 믿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도 믿음의 결국이 곧 영혼의 구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는 질문 앞에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저하고 망설이고 확답을 쉽게 못할까요?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을 받았는지를 공개적으로 확답하기가

어색하고 하나님만 아시는 문제를 어찌 내가 감히 받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다소 겸손한 입장을 취하는 분들의 입장입니다.

 

둘째는 내가 구원 받았다고 하는 것이 너무 믿어지질 않아서입니다.

내 자신의 행실을 보니 구원 받았다고 아멘하기에는

어쩐지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구원이 어떤 구원을 말하는 것인지를 몰라서입니다.

내가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나는 죄악의

세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확답을 하기에는 혼란스러운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전신갑주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구원의 투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3-17)

 

진리의 허리 띠의의 흉배복음의 신발믿음의 방패구원의 투구 등의

방어용 무기들과 더불어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의 공격용

무기까지 성도들이 갖추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원의 투구’ 곧 구원의 확신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미 구원 받은 것을 확신하는 것이

영적 전쟁에서 우리가 반드시 써야 할 투구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구원의 투구를 쓰셨습니까쓰고 계십니까?

아니면 이 구원의 투구도 쓰지 않고 영적 전쟁을 하고 계셨습니까?

 

기독교계에서는 이 ‘구원 문제’에 대한 커다란 두 가지 줄기가 있습니다.

첫째는 나는 이미 구원 받았다이 확신에서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견해와

둘째, ‘구원 받았다고 자만하지 말고 날마다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견해인 것입니다.


첫째 구원을 “동의적(同意, Agreement) 구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믿는다고 동의만 하면) 구원 받았다는

주장인데 너무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둘째 구원은 행위가 따르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면서

동의적 믿음만 가지고는 절대로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세 번째 부류가 있다면 동의적 구원과 행함으로 입증되는

구원 사이에서 어정정하고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할 때 어떤 견해가 맞습니까?

이 두 가지 견해 중 어떤 것이 성경적인 견해일까요?

정답은 두 가지 다 성경적 견해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서로 상충된다는 말인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견해는 상충되지 않고 오히려 조화되는 것임을

성경을 좀 더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보겠습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5-8)

 

이제 이 성경절을 읽은 후에 다시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얻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이 구원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었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충분히 아멘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원이 우리가 이미 받았다고 아멘 할 수 있는 성경의 구원입니다.

구원과 같은 의미인 영생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위 말씀에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할 때

‘옮겼느니라’로 번역된 헬라어는 ‘메타베베켄(μεταβέβηκεν)’입니다.

이는 ‘떠나다, 출발하다, 이동시키다, 옮기다’ 등의 의미를 지닌

‘메타바이노(μεταβαίνω)’의 완료형 표현입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이미 받은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을 보겠습니다.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여러분 중 이 구원을 받은 자가 있습니까?

이 질문은 질문 자체가 틀렸지요?

이 구원은 어떤 구원인가요?

성도들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얻는 몸의 구속이지요?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분명히 성도들입니다.

이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성도들도 아직 여전히

받을 구원이 여기 있지 않습니까?

 

사도 요한은 이 구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계 21:26-27)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공언을 해도 거짓말하고 가증한 일을 하고

속된 자들은 결코 하늘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는 구원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영원한 구원을 받을 자들의 신원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3-5)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렇게 산 자들만이 성경이 말씀하는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습니까?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만이 구원의 증거가

아닌 것은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출 32:33)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하더라도

범죄 하면죄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그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한 번 받은 구원은 우리가 어떻게 살던 관계없이

무조건반드시 구원과 영생이라고 하는 구원파 등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거짓말인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2:19)고 하였고 뿐만 아니라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8-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며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불의한 자들은

결국은 구원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이러한 견해는 예수님의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말씀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히브리서는 장차 성도들이 얻을 이 구원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

 

누가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됩니까?

죄와 상관없이” 사는 자들입니다.

하늘은 아무나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 다음 죄와 상관없는

자들만이 들어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죄와 싸우라고 다음과 같이 독려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히 12:4)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워 본 경험이 있습니까?

 

성경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자들이

결코 아무렇게나 살아도 구원은 받는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거짓 기별자들은 오직 믿음으로 받은 구원은 우리가 어떻게 살든지

절대로 그 구원은 상실되거나 취소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매우 독성이 강한 거짓 기별이요 다른 복음인 것입니다.

 

성경은 아무리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일지라도 그 믿음의 열매인

순종과 행함이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가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4-17)

 

야고보는 더욱 강력한 말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약2:24)


여러분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은 아닌가요?

아니라면 여러분의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된 믿음 맞습니까?

여러분이 예수 믿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을 죄에서

구원했다고 하는 그 믿음의 위력권세권능은 능히 여러분의

삶에서 아름다운 행함과 순종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도 자신의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그러면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위해단 사도도 버림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스스로 쳐서 복종케 하는 삶을 살았다면

오늘 우리는 얼마나 더욱 더 그렇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정말 우리는 날마다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방금 살펴 본 것처럼 성경은 두 가지의 구원을 말씀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구원이 두 종류가 있다는 말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이 값없이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받는 과정을

성경은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을 때 오직 믿음으로 받은 구원과 오직 예수 믿음으로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갈 때 궁극적으로 얻을 구원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구원에 대해 확실하게 살펴 볼 말씀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오직 믿음이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동의’만 하면 구원이라는

단순한 도식을 주장하는 분들이 그 확실한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절 중

요한복음 6장 47절을 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6:47)


이 성경절만 보면, 한 번 믿은 사람은 과거에 이미 영생을

가진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졌나니’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과거 동사가 아니라

현재 시제로 되어 있는데 우리가 아는 것처럼 헬라어 문법에서

현재시제는 진행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의 현재형은 계속되는 진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종종 ‘현재 진행형’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다음 구원의 확신에 대해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분들이

가장 강력하게 인용하는 성경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었고(has)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has crossed over)"(요5:24)


그냥 우리 말 개역 성경은 믿는 자가 이미 영생을 소유한 것처럼

번역되어 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상태로 이미 상황이

완료된 것으로 읽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어 성경만 보더라도 ‘현재 완료 시제’를 쓰고 있습니다.

영어의 현재 완료 시제는 과거의 어느 시점부터 시작된 일이

지금 막 마친 경우를 가리킬 때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일이 중단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을 암시할 때

사용하는 시제가 바로 현재 완료 시제인 것입니다.

영어든 헬라어든 이미 종료되어 더 이상 계속되지 않을 경우에는

단순 과거를 쓰지, 현재 완료 시제를 쓰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에 충실한 이해는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어

지금도 계속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지금도 그 생명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과 영생은 오직 믿음으로

과거에 얻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에서

그것은 계속되고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을 수 있고 오직 믿음으로 지켜지고

오직 믿음으로 결국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구원에 대한 양면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오직 믿음이면 무조건 구원”이라는 것을 주장하는 자들은

현재 오직 믿음으로 지켜지는 구원과 믿음으로 받을 구원을

오해하고 곡해하여 “한 번 얻은 구원은 절대로, 죄를 지어도,

회개하지 않아도 무조건 구원 얻는다”라는 납득할 수 없는

비성서적 주장을 일삼으면서 우리와 같이 믿는 자들을

율법주의자, 행위주의자라고 맹비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버릇처럼 외쳐대는 ‘믿음’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외우고 잘 아는 성경절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위 구절에서 “믿는 자마다”라고 할 때 헬라어 원어를 보면

“피스튜온”(πιστεύων)으로 현재 능동태 분사형으로

‘진행’과 ‘반복’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한 번 믿음으로 영생이 아니라

그 믿음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지속되고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믿었거나 한 번만 믿는 그러한 믿음이 아니라

신앙생활 내내 지속되어지고 지켜져야 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혹은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어지는 그러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계속하여 다른 성경절들을 더 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이 말씀 중 “믿는”은 헬라어로 ‘피스튜우신’(πιστεύουσιν)인데

이것 역시 현재 능동태 분사형으로 진행과 반복의 의미입니다.

즉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말씀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위 말씀에서 “믿는”도 역시 헬라어 ‘피스튜온’(πιστεύων)으로

현재 능동태 분사로서 ‘진행’과 ‘반복’ ‘지속’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믿고 구원 받고, 믿고 영생을 얻는 등의

말씀에서 믿음이란 한 번 믿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행되고 계속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 믿은 우리들이 과거에 믿었던 그 믿음을

지금, 현재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망설이거나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 믿을 때 가졌던 바로 그 믿음을 오늘도 행사하여

“예, 나는 내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그 믿음이란 오늘 살펴 본 것처럼, 과거에 믿고

끝나 버린 믿음이 아니라 지금도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인 믿음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주님 오시는 재림의 날까지 혹은 내 생명이 이 땅에서

다하는 그 날까지 계속될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은 결코 상충되지 않습니다.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결코 상충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마서와 야고보서 둘 다 하나님의 복음인 것처럼,

받은 구원과 받을 구원은 둘 다 복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만 외쳐대면서 그 믿음이 행사되어

처음 믿음을 온전케 하는 순종과 행함을 도외시하는 것이야말로

균형을 잃은 잘못되고 곡해된 복음이며 다른 복임이 확실합니다.


오직 예수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 확실히 진리입니다.

그것은 가장 짧은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결코 거기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 ‘믿음’이 무엇이며 ‘구원’은 무엇인지를 말해야 합니다.


복음은 로마서로만 끝나지 않고 야고보서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놓치면 그 복음은 왜곡된 복음이 맞습니다.

구원에 대한 이러한 양면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갖는

무조건적인 구원의 확신은 자칫하면 미신이요 맹신이요 광신이 됩니다.


구원 받았다는 ‘동의’와 ‘자각’만이 구원의 확신이라면 그것은

절대로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구원과 믿음은 나의 삶이 변화되고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구원의 경험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되어지지 않는 구원은 가짜 복음입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된 구원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내가 오직 예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구원을 지금도

경험하며 장차 받을 구원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진정한 구원의 확신을 날마다 누리는 경험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써야 할 구원의 투구인 것입니다.


글 박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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