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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목 :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로 인한 장로교회의 분열


2023.08.08(화) 시간을 내서 여수 애양원병원과 손양원 목사 기념관 등을

방문했다.

날씨는 30도를 넘었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떨어졌다.


그렇게 더운 날.. 기념관 야외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일반 공무원이나 '직원'이라면 이런 서비스는 불가능할 것이고,

또한 작은 기념관에 주차장도 많은데, 이런 서비스가 필요할까?


하여간 주차를 하고 내렸는데, 주차안내를 했던 사람이 다가와서

자신이 손양원 목사의 막내 아들 손동길 목사라고 소개했다.


손양원 목사의 형제자매는.

누나 손봉연(1896년생), 동생 손문준, 손의원(1909년) 

그리고 손양원 목사의 자녀 사항은

1925 동인, 1930 동신, 1933 동희(여), 1936 동장(여), 1940 동림(여)

1947 동연, 1950 동길 등 4남3녀를 두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현재 74세 손동길 목사인 것이다.

이분은 손양원 목사가 1950.6.25 전쟁 당시 공산당에게 순교 당하고 나서

3일 뒤에 태어난 막내 아들이다.


난 손동희 큰딸이 쓴 '나의 아버지 손양원 목사' 라는 책을 이미 읽고 왔는데,

형제 사항 및 형제 사항부터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충격적인 것은 손동길 막내가 큰누나 손동희님이 쓴 책 내용은 60% 이상이

과장과 거짓으로 되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안내를 통해서 그 거짓을 바로 잡겠다고 이렇게 서 있다고 했다.

img.jpg

위 사진은 그분의 요청에 의해서 들어간 유튜브 영상을 캡쳐 한 것이다.

그분은 미국에 가서 생활하다가 10여년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시골에 작은 기념관에 이렇게 해설사 혹은 가이드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것도.. 70세가 넘는 연세에 손수 나와서 안내를 한다는 것은 흔하지 않다.

뭔가 어지러운 사연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하여간 그분은 자세한 설명을 하기 전에 협조해야 한다고..

유튜브를 열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손동길 유튜브에 들어가서

<구독>을 클릭하게 시켰고, '좋아요'를 클릭하게 시켰다.


억지로 구독자를 증가시키는 이런 행위가 편하지는 않았지만.. ~!

더 특이한 것은 기념관 입구에 헌금함이 있는데, 여기에 소정에

헌금을 해 달라고 했다.


헌금을 안 했더니, 헌금함 앞에서 헌금할 때까지 서 있었다.

황당했지만,.. 서울에서 여수까지 내려갔는데, 돈 몇푼 때문에

얼굴 붉히기도 그렇고.. '만원'을 헌금함에 넣었다.


그랬더니 비로소 해설과 안내를 시작했다.

그분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손동희'누나가 쓴 내용 중에 상당부분이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1995년 언더우드 선교사 및 장로교 선교사들로 인하여 장로교가 조선땅에

전도된 이후로 현재 200여개로 분열된 상황을 간략하게 언급하고자 한다.

(장로교는 2018년 기준 280여개 분파로 분열됨)

왜냐하면 그 이유가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에 큰 영향이 있기 때문이다.


(1950년 이전에 손양원 목사가 사용하던 무대 의자와 오르간)

기념관 안에 전시된 것

시골에 사설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가짜 전시물'이 많다.


즉, 그 인물이 실제로 사용한 것이 아닌.. 그럴듯한 전시물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나마.. 손양원 기념관에서 실제로 손양원 목사가

사용했다고 하는 전시물이라서 사진을 찍은 것.

img.jpg

또한 손동길 목사가 74세 노인이 되어서 기념관에 나와서 '해설사'를

하고 있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장로교'가 280여개로 분열된 가장 큰 이유는.. 

일단 한국은 교회 분파를 만드는 과정이 쉽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나가서 등록하면 새로운 분파가 생겨난다.


장로교는 유명 목사가 나가서 개척을 해서 규모가 커지면 실권을

가진 사람인 당연히 그 교회를 설립한 '목사'이다.

즉.. 장로교 본부 내지 조직이 아니라, 담임목사의 권한이 더 커진다.


장로교 연합회에서 추방된다해도 그 목사가 별도의 장로교로

분리/독립하면 그만이라는 의미다.


1930년 후반..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의 강제 신사참배'가 사건의 발단이다.

일본이 욕을 먹는 것중에 하나는 그들의 엉터리 종교를 조선 백성들에게 

강요는 물론 (따르지 않으면) 고문하고 죽였다는 점이다.


장로교가 조선에 들어와서 1912년에 제1회 총회(조선예수교장로회)를 할 때까지는

단일 종파였다.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1938년 제27회 장로교 총회에서 결의하기를.

신사참배는 국민의례에 불과하니 참배에 동참하라고 선언한다.


그것이 장로교의 순수한 의도가 아니라 일본의 강요, 협박에 의한 것이다.

하여간 대략 90% 이상 목사들은 신사참배를 한다.

(위 수치는 내가 판단한 것이며,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10%도 안 되는 목사들이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죽거나 고문 내지 옥살이를 하게 된다.


해방이 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 목사단체와 신사참배를

수용한 목사단체들이 서로간에 갈등이 시작된다.

이러한 갈등은 1950년 전쟁 과정을 지나면서 증폭되었다.


목숨걸고 신사참배를 거부한 '고신파'는 신사참배를 수용한 장로교 본부는 회개하고

장로교 본부 조직을 해체하라고 압박한다.


그러자 1951년에 90% 이상의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었던 장로교 본부에서 

(회개는 고사하고)

고신파 목사들을 강제로 탈퇴시켜 버렸다.(내쫓았다.)

1952년 고신대학교(부산)를 중심으로 '예장고신'(고려파)가 그렇게 생겨난다.


다같은 장로교가 아니라 이들은 교회의 일치통합을 반대하고, 케톨릭의 정통성을

부인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고신파와 반대로 종교의 자유주의와 복음주의 노선으로 1953년에 창립된

것이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으로 분열된다.


1959년에 WCC(세계교회협의회) 가입을 놓고 찬성하는 장로교인과 반대하는

장로교인이 형성되면서 또 다시 분열되게 된다.

통합측(예장통합), 합동측(예장합동)


그 이후에도 성경해석을 놓고 서로 갈등이 생기면 나가서 새로운 장로교파가

분열되어서 나가는 과정이 반복되다보니 오늘날 280여개파로 나눠지게 되었다.

좀더 자세히 연구하면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겠지만,

그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img.jpg

위에 나오는 손양원 목사는 장로교 어느 파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또한 교회가 분열되기 전에 순교(총살) 되었으니 분열되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억지로 분리하자면 신사참배를 끝까지 거부한

고신파 내지 고려파에 속한다.


1938년부터는 수많은 장로교 목사들로부터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을 놓고,

공격을 받아야 했고, 그를 받아주는 곳은 문둥병자 교회밖에 없었다.

또한 해방후에도 신사참배를 수용한 목사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어딜 가든지

그 비난과 조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세워지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고신파가 아니라

그 외에 막강한 힘을 갖고 있었던 예장, 기장파 장로교가 도왔다는 것..

왜냐하면 손목사가 순교한 후에 '애양원'에서는 애양원교회 조직을 일반 장로교로

들어갔고, 훗날 기념관 건물의 관리 등을 '애양원교회' 소속이 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손동길 목사는 아버지 뒤를 이어서 '고신파'에 가깝다.

그분 입장에서는 아버지 살아생전에 그렇게 아버지를 핍박했던 목사(단체)들이

이제는 아버지를 이용해서 헌금과 관련 서적들을 판매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현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고 보여진다.


또한 자신의 큰누나 동희가 더 막강한 힘을 줄수 있는 장로교파에 합류되어서

활동하는 것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를 왜곡한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었다.

img.jpg

가장 황당한 사건은 손양원 목사의 두 아들을 살해한 공산당 안재선에 대한 진실이다.

손양원 회고록에는 회개해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되어 있다.


손동길 목사가 같이 살면서 보았지만, 손동희 권사도 진실된 기독교인으로

부적합하고, 특히 안재선은 죽기전 3개월 동안 잠시 교회를 다니다가 죽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


그 증거로 손목사 추모식 때.. 안재선이 입고 온 복장은 마치 나이트클럽 무대에

설 수 있는 화려한 반짝이 옷이라고..

장례식장에 이런 옷을 입고 온 것 자체가 장로교인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고록에 나와 있는 수많은 안재선 회개 기록들을 마구 조작해서 

만들어낸 소설이고, 그로 인하여 손양원 목사 행적을 위조하고,

각종 강연회에서 많은 기부금을 챙긴 행위를 비난했다.


또한가지.. 불만인 것은.. 손양원 기념관이 천주교 '성지'가 되어 있다는 것..

수시로 수많은 천주교 단체에서 이곳에 와서 순례를 한다는 것..

본인 역시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다.

위 사진은 기념관 내부에 있는 사진이다.


패널에 쓴 해설에 '성인 안재선'이라는 글이 이해하기 힘들다.

살인자 안재선에게 천주교회에서 사용하는 '성인'이라는 호칭을 붙인 것이다.


3개월동안 장로교회 다닌 것이 신앙의 전부이고, 안재선 부모 역시 지독한

빨갱이인데... 도대체 안재선은 언제 천주교로 입적되었으며...

무슨 수로 '성인'이라는 반열에까지 오를 수 있었을까????


정확한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손동길 그가 말하는 진실이다.


손양원 기념관에 오는 인파가 많다보니 여수시청에서는 해설사 2명을

지원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해설사 두명이 '천주교인'이었다.

그리고 장로교 기념물이 서서히 천주교로 변질되게 되었다.


즉.. 십자가 형태가 로마 카톨릭에서 볼 수 있는 문양을 띄게 되었다.

장로교회에서는 십자가 자체만 있고, 다른 문양이 없다.

하지만 천주교 십자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있는 형태를 삽입시켰다.


기념관 안에 있는 모든 십자가에는 천주교 형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또한 기념관을 건축한 건축업자(사장)이 원불교 소속이다보니.

어찌 된 것이 원불교 신자들도 많이 온다고...


이러한 왜곡된 현실이 싫어서 손동길 목사가 모든 해설사 들을

내쫓고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고 74세에 혼자 분투한다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딱할 노릇이다.

img.jpg

안재선이 낳은 아들(안경선)이 현재 목사를 하고 있는 것도

손동길 목사가 전도하고 설득해서 신학과에 가게 되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손동희 씨가 쓴 서적에는 철저하게 손동길에 대한 내용은

가려져 있다.

img.jpg

심지어 손동길 목사는 손동희 누나가 자신의 어머니를 우산으로

폭행해서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모습까지 목격했다고 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

손동길 목사는 손양원 목사가 순교하고 딱 3일 이후에 태어났다.

그래서 손양원 목사에 대한 기억은 주변 사람과 어머니를 통해서 얻었을 것이다.


그렇다해도 1950년 이후에 발생한 모든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분의 주장이

허구라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 입장에서는 가족간에 발생한 갈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데

너무 열심히 설명하다보니..

나에게는 참.. 지루한 상황이었다.


기념관에서 50미터 옆에 '삼부자' 묘가 있어서 사진에 담았다.

맨 뒤에 있는 묘가 손양원 목사 부부 무덤.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두개는 여수순천 사건으로 인하여 순교당한 두 아들.

img.jpg

묘지 우측에 있는 알리미늄 안내 판이다.

그 내용을 읽어보면.. 누나가 쓴 회고록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다소.. 놀랐다.

(그 내용중에 일부를 아래에 그대로 옮긴다.)


------------------------------------------------------

- 손양원 연구에 대한 몇가지 보충 -

1)손양원은 통합 교단이 아니라는 증언

손양원은 한국 교단들이 분열하기 전 순교했다.

순양원은 분열하기 전의 초기 고려파 신앙이다.

현재 고신, 합동, 통합 교단에 소속되지 않았다.


2)순양원은 동상을 반대했다는 증언

동상을 만들면 우상으로 갈 위험성이 많아진다.

신사참배를 반대한 것은 우상을 반대한 것이다.

신앙인의 문서는 신앙의 자료로 연구할 수 있다.

그래서 유가족은 유품들을 무척산에서 소각하고

문서처럼 연구 자료들만 애양원에 맡겨 놓았다.


3)나환자의 고름을 빨았다는 증언

나환자의 고름을 빨아 냈다는 말은 늘 많았지만,

실제 혼 사람은 없고, 그럴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회고록을 잘 적으려고 지나치게 과장하다 생긴 일이다.

당시를 아는 분들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앙으로는 그러고도 넘칠 분이라 한다.


이 알리미늄 안내판은 '손동길목사'가 세워 놓은 것이다.

진실, 양심을 향한 그에 태도가 일반 사람 같지는 않다.


손양원 목사들 유족들 같에 교단이 분리되고, 갈등이 많은 것은

안타깝다. 그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 난 그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그것은 그들 일이고, 난 내 일에 신경쓰기도 바쁘다.

--------------------------------------------


진실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도 좋지만.. 자칫 잘못하면 오해를 줄 수

있음을 각오하게 이렇게 노력하는 손동길 목사를 보면서...

평범하지 않음을 느낀다.


하여간 결론을 내린다.

< 손양원 목사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순종하며 살다 순교했으며,

그 삶을 통한 교훈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들 신앙인이 본 받아야 할 모습이다.


(아쉬운 것은 그에게 재림기별이 전달되었다면,

우리 교단으로 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글을 정리하면서..

'신사참배'와 관련된 글을 조금 더 쓰고자 한다.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로 인하여 한국의 모든 기독교가 큰 시련을 겪었고,

또한 그것도 모자라서 해방/전쟁 이후에는 교단이 분리되었다.


그럴지라도 대부분의 기독교단들은 '신사'에 참배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한 사실을 침묵했고, 세월이 많이 흐르자 우린 그런 적이 없다고

은근슬적 거짓말을 했다.


그래.. 맞다. 사람은 누구나 연약하다.

나 역시 그 순간이 되었다면 신사참배를 했을 것이고,

손양원 목사를 비난했을 것이고,

세월이 지난 후에는 손양원 목사를 도와서 많은 일을 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신사참배'한 역사를 숨기고 있을 때에 가장 먼저 '신사참배'한 것을

회개하고 밝힌 사람이 있다.(한경직 목사다.)

img.jpg

한국 장로교회에 가장 높은 사람이고, 특히 해방후 장로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가 전세계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높은 '템플턴상'을

받으면서 '신사참배'를 고백하고 회개했다.


그냥 침묵했으면 그 누구도 말하지 않을 그 진실을 자기 입으로 말한다.

그는 노년에 지독한 치매로 인하여 남한산성 산속에 격리되서 살았다.

치매로 인하여 그분에 대한 충격적인 일화도 많다.


그럴지라도 아직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다.

가장 먼저 신사참배를 회개한 목사 한경식을 나 역시 대단하게 본다.

img.jpg

장로교회가 1938년에 신사참배를 수용하고 그 이후에 묵인하고 살아 오다가,

2022.11.24 연합감사예배(제주 국제컨벤션센터- 위 사진)에서

예장, 합동, 기장, 합신 등 4개 장로교 교단 500여명 지도자들이 모여서

'신사참배' 회개 기도회를 열었다.


그날에 결정은 하나님 앞에 크게 범죄한 행위라고 회개와 용서를 비는 시간이었다.

84년만에 회개... 과연 여기 참석한 사람중에 실제 신사참배를 한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대부분의 그들의 후손일 것이다.


이것을 모든 언론에 알려서 자신들의 잘못을 공개했다.

조상들의 잘못을 후배들이 대신 반성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감리교 신사참배 회개기도회>

1936.6 양주삼 감리교 대표 '언론지'인 감리회보에 신사참배는 '국민의례'라고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1936.10 감리교 모든 대표자들이 남산 신궁에 가서 신사참배를 하면서

변격화되었다.

img.jpg

그리고 77년동안 그것을 침묵하다가 2013.04.05 '기독교 감리회' 제 33회 서울연회에서

1500여명의 감리교 대표 목회자, 평신도가 모여서 과거 감리교 조상들이 한

신사참배에 대해서 회개하는 집회를 가졌다.


그러면서 '신사참배 회개를 위한 공동기도문'을 발표했다.

그 기도문을 읽으면서 진심이 느껴졌다.

(일부를 아래에 첨부함)

img.jpg

우리는 연약하고 불완전한 죄의 형질로 가득하니..

누구든지 범죄할 수 있다.

죄를 짓고, 회개하면서 우리 신앙은 서서히 천국으로 다가간다.


우리가 죄를 짓고 , 회개하지 않는 것..

그것도 또다른 '죄'가 될 것이다.


손양원 목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손동길 목사에 대한 이야기.

모두 다 간략하게 정리하다보니 오해할 수 있는 부분도 많다.

또한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다보면 더많은 오해를 줄 수 있어서

제외시킨 부분도 많다.


독자들의 폭넓은 이해를 바란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듯이..

본인 또한 글이 길다보니 실수가 많다.


부족한 글이지만... 이를 통하여 인간의 연약함/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재림성도들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손양원 목사'와 관련된 모든 글을 마친다.


글 최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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