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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부
2016.10.30 13:50

기독교 개혁의 네 가지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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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개혁의 네 가지 구호

성경/엡 4:1-10절

어느 날 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가 기도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하늘나라의 꿈을 꾸었다. 그가 황금 유리가 깔린 찬란한 보석 길을 따라 하늘나라에 도착했을 때 천국의 수위천사가 정중하게 마중하여 주었다. 웨슬리는 마음에 궁금해 하던 한 질문을 수위 천사에게 던졌다. <천사님, 나와 더불어 영광스러운 감리교 운동을 하던 성도들이 하늘나라에 얼마나 왔습니까?> 웨슬리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천사의 답을 기다렸다. 천사는 한참이나 하늘나라 명부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용하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감리교인 명단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웨슬리는 큰 충격과 실망 속에 빠지고 말았다.

<나의 신앙에 무슨 잘못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선교활동은 결국 실패한 거야. 그렇다면, 칼빈의 교리가 맞았나 보다. 천국은 온통 칼빈 주의자들로 가득 차있겠구나.>

웨슬리는 천사에게 힘없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장로교인은 얼마나 있습니까?>

천사는 다시금 생명책을 꺼내어 보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 사람도 없소.>

<천주교인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드디어 웨슬리는 흥분되었고 천사에게 따지듯이 묻자, 천사는 조용히 펼쳤던 생명책을 덮었다. 그리고는 요한 웨슬리를 바라보면서 힘주어 말했다.

<여기는 그리스도인들뿐이오!>

 

 

종교개혁은 중세기 로마교권이 부패하면서 싹트기 시작했다. 루터 이전에도 많은 개혁을 외친 교회지도자들이 있었다. 얀 후스를 비롯한 위클리프 등 여러 개혁들이 개혁을 시도한 적은 있었지만, 많은 추종자들이 따르지 아니하여 한 순간에 그치지 말았다. 개혁을 시도한 개혁자들은 개죽음으로 최후를 맞이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의 부패를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셨다. 본격적인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독일의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가 비덴베르크 대학 정문에 카톨릭의 부패에 관해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부착한 것을 기폭제가 되어 시작된 것이다. 그 중에도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은 면죄부 판매 때문이었다. 당시 도미니크 종단의 사제 테첼이 간교한 방법으로 백성들을 선동하여 이 면죄부를 사게 되면 연옥의 고통에서 면제된다고 구원의 교리를 사람의 방법으로 미약한 성도들을 현혹시켰다. 여기에 분노한 마틴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외치게 되었고,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내걸었던 것이다. 그때 루터가 황제의 소환을 받아 보름스 의회에 서면서 <교황에게건, 의회에게건 난 내 신앙을 버릴 수 없다. 그들의 오류가 빈번하며 서로 모순된다는 것은 대낮처럼 분명하기 때문이다. 성경의 증거를 받아 확신하는 나는 결코 철회할 수 없다. 내가 여기 섰으니 딴 길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외쳤다. 또 보름스에 가는 것은 생명에도 위험이 있으니 가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보름스에 있는 모든 기왓장이 다 마귀가 되어 나를 공격한다 해도 나는 가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 여파가 쯔빙글리의 믿음과 요한 칼빈의 지성이 함께 유럽을 휩쓸었고 존 낙스로 하여금 스코트랜드의 종교개혁을 하게 되었다. 또한 요한 웨슬리로 하여금 영국 감리교회를 창립하게 했고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에게 큰 부흥의 불길을 당기게 하였다.

 

 

당시 수도사들이 진정한 복음을 몰랐기 때문에 고행으로 자기의 영혼을 구원하려 했고, 기도문을 읽어도 그 내용이 어느 성경에 기초한 것인지도 몰랐다. 심지어 고급 사제들이 대낮에 창녀들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교황의 무오설을 믿고 성경의 권위보다 교황의 권위가 더 앞섰던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개혁의 중심사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주님께서 외치신 종교개혁의 중심은 무엇이었는가? 성경에서 말하는 종교개혁의 주제는 무엇인가?

 

 

첫째/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다.

본문 5절 <주도 한 분이시요> 구원은 오직 유일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교황이나 신부가 주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고행으로 죄사함 받는 것도 아니며 면죄부를 산다고 구원받는 것도 아니다.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요? 어떠한 위대한 인물도 대신할 수가 없다. 자수성가한 인물도 대신할 수 없다. 세상에서 존경받는 사람일지라도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 예수님은 선언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 14:6)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말씀하셨다. 모든 인간의 유일한 대속주가 되시고,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고, 유일하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정신과 신앙은 세상 끝 날까지 교회가 보존해야 될 중심사상이다.

 

 

둘째/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개혁자 마틴 루터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Back to the Bible)고 역설했다. 교황의 권위도 성경의 권위보다 앞설 수 없다. 성경 외에 그 어떤 사람의 철학도, 사상도, 문헌도, 다른 경전도 우리 구원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없다. 참고는 될지언정 신앙의 표준도 구원의 표준도 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성경만이 우리 신앙의 표준이며 신앙의 대상이 되며 신앙의 고백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장자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가 무엇인가? 호세아 선지자는 그 이유를 밝혔다.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너희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이뿐만이 아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경고를 전해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으며>(호 4:1)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1927년 쥘리앵 방다에 의해 출판된 <지식인의 반역>이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행군 도중 자꾸 뒤쳐지는 동료를 구타하는 병사를 보고 톨스토이가 꾸짖었다. <친구를 그렇게 대하다니 자네는 성경도 안 읽었나?> 그러자 병사는 <상관께서는 군대의 규율을 안 읽으신 모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현세를 바로잡으려는 톨스토이의 질책과, 엄격한 징벌로 기율을 잡으려는 부하의 책임 의식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은가? 아니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 <지식인의 반역>의 저자 쥘리앵 방다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했다. <지난 50년 이래 유럽에서 이름을 떨친 모럴리스트의 대부분이 -이상하게도 프랑스에서는 작가들이- 성서를 비웃고 군대의 규율을 읽도록 인류에게 권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향해 무엇을 책망하셨는가?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하여 너희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태 15:2-9)고 꾸짖었다. 예수님은 여기서 무엇을 꾸짖었는가? <장로들의 유전>이었다. 오늘날의 장로들의 유전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학자들의 주석, 신학자의 해석과 교의, 교단들의 헌법과 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때와 똑같이 성경의 권위보다 주석이나 헌법 그리고 학자들이 만든 교리가 더 권위가 있다. 교단에서 목사나 직분자들을 징계하는 표준은 성경이 아니라 교단의 헌법이나 교리이다. 그리고 성경보다 교단의 헌법이나 교리를 위배했을 때 정죄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 주목할 일이다.

 

 

오늘날의 계시는 66권외에 새로운 성경을 만들기 위한 계시는 있을 수 없다. 다만 성경에 근거한 계시는 오늘날도 계속 되어야 한다.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 성령의 계시는 계속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모든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의 표준은 성경에 근거해야 한다. 말세에 교회와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말세에 부어주실 하나님의 성령을 통해 성경을 재조명해야 새로운 교회, 새로운 개혁, 새로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다.

 

 

셋째/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이 받는다.

본문 5절 <믿음도 하나요> 구약이나 신약에서 선포한 구원받는 선행 조건은 우리들의 믿음이었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가장 크게 강조했던 것도 역시 <오직 믿음>(Sola Fidei)이었다. 우리도 구원받는 것은 면죄부를 사는데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고행을 행하는 것도 아니며 더욱이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당시 교인들은 죄를 지으면 고행을 해야 죄가 없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성계단」을 맨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모래알이나 유리조각에 찔려 피를 흘리면서도 한 계단씩 오를 때마다 입을 계단에 맞추었다. 지금도 이태리나 스페인에 가보면 그렇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틴 루터는 여기에 강력히 반발해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성경의 말씀을 강조하고 외쳤다. 구원은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고행으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강력하게 성경대로 주장했다. 사도 바울은 엡 2:8절에서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했고, 9절에서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은 구원의 방법에서 어떤 선행을 조건으로 제시하신 적이 없다. 구원은 유대인들의 주장처럼 율법의 할례를 행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또는 침례주의자들의 주장대로 물속에 잠겨 침례를 받음으로, 아니면 카톨릭의 주장대로 고행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다.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지적으로 정적으로 동적(의지적)으로 인정하고 고백하여 시인하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게 된다. 본문 6절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넷째/오직 성령을 받아야 한다.

본문 4절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에 대속의 사명을 다하시고 부활 이후에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500여 성도들을 모아 놓고 간곡하게 부탁하신 말씀이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여 전혀 다른 질문을 했다. 그때에 주님도 동문서답을 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여기서 주님의 간곡한 부탁의 핵심이 무엇인가?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 성령의 불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 성령의 은사를 받으라.>는 뜻이다. 왜 주님은 간곡한 부탁으로 성령을 받으라고 했을까? 주님의 제자들은 왜 성령을 받아야만 하는가?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서야 주님의 말씀의 뜻을 깨달았다.

성령을 받아야 만이 거듭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주라고 시인할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의 역사이다.

바울은 고전12:3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이다.

바울은 롬 8:15절에서 그리고 갈 4:6절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했다. 더욱 확증적인 말은 롬8:16절에서 한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더 나아가 이 사실을 보증하는 일도 성령이 하시는 일이라 했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후 1:22, 5:5, 엡 1:13, 14, 요일 3:24)

❹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은 더욱이 성령의 권능이다.

하늘에 영원한 집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오직 성령의 힘이다.

바울은 고후 5장에서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해서 전하면서 이 일을 이루고 이 일에 보증이 되는 것도 성령이라 하셨다.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고후 5:5)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격에서 육체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바울은 말한다. 따라서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의 역사를 통해 나타내신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이 시대를 개혁하는 일꾼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한다. 성령과 함께 세상을 개혁하는 일꾼은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21세기가 아니라 31세기가 되어도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우리 구세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지식이 사상이 홍수시대를 열어도 거기에는 진리가 없다.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말씀은 오직 성경이다. 아무리 의식을 많이 행하고 여러 가지 육체의 모양을 내어도 그것은 구원의 방법이 될 수 없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보증은 성령을 받는 일이다. 성령을 받을 때 비로소 자녀된 증거를 확증할 수 있다. 성령을 충만히 받을 때만이 예수의 증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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