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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부
2016.07.24 19:46

전도의 동력은 사랑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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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는 어려운가? 우리는 자주 말하면서도‘전도’를 아주 부담스러워한다. 전도=교세 확장으로 보고‘전도’라는 말이 나오면 이맛살부터 찡그리게 될 만큼 전도의 값이 저 밑으로 많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전도=특수한 은사라고 생각도 한다. 그래서 교회에서 전도를 독려할 때면 일 년에 몇 백 명을 전도했다는 수퍼 영웅들을 초대해 강연을 듣게 한다. 들을 때는 귀가 솔깃하고‘나도’하는 마음이 들지만 생활 현장으로 돌아가면 여전히 전도는 남의 일이다. 전도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초대교회 사람들은 어땠을까? 아니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한 작은 대답을 찾아보았다. 아래 글은 Robert Banks와 Paul Stevenson이 편찬한“ The Complete Book of Everyday Christianity"(IVP)에 나온 전도(Evangelism)항목을 읽고 정리한 것이다. 이 항목을 적은 John Drane은 여러 저서를 출간한 영국의 신약학자이다.


전도라고 할 때‘도’에 해당하는 말은 신약성경에서‘euangelion(유앙겔리온)’이라 한다. 그대로 풀어 말하면‘좋은 소식’이라는 뜻이다. 영어에서 전도에 해당 하는 말‘evangelism'은 바로 위의 헬라어에서 나왔다. '좋은 소식을 나눔’이라는 뜻이다. 우리 주님도 전도를 바로 이런 의미에서 사용하셨음을 눅4:18-19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이렇게 좋은 소식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어느 덧‘도를 전파함’이라는 사뭇 딱딱하고 무거운 말‘전도’가 태어났다. 전도라 하면 거창하고 비장한 인상이 풍겨지는 것은 이 한자말이 주는 선입견 탓도 조금은 있는 것 같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듣고 그 안에서 살게 된‘뜻밖의 좋은 소식’을 자연스레‘나누며’살아갔다. 맛있는 식당 만 알고 있어도 대단한 뉴스라도 되는 양‘그 식당 가보세요!’를 연발하는 게 사람심리 아니든가!
 
잘못된 개념

말만 무거운 게 아니다. 우리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전도에 대한 잘못된 개념도 문제이다. 불신자들의 생각: 저 사람은 날 교회사냥감 정도로 생각하는군! 신자들의 생각: 전도라…. 또 큰 집회가 벌어지겠지! (혹은 이거 또 죄책감 느끼게 만드는 군, 근데 전도를 어떻게 하는 거지?) 우리에게 전도는 이래저래‘일’이 ‘짐’이다. 사람들을 불러와야 하고, 복음을 던져줘야 하며 이 복음을 믿으라고 강권해야 하는 활동으로 느껴진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는 대형집회, 대중 동원이 아니었다. 불신자를 정해놓고 집요하게 펼쳐야 하는 복음의 공작(?)도 아니었다. 그들은 마치 소금통 밖으로 나온 소금처럼, 세상과 사람들 속에 섞여 살며 세상에 없는 가치를 살아냈다. 불신 세계가 이상한 매력을 느껴 묻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당신들은 어찌 그렇게 살 수 있소?’
 
전도를 막는 교회(?)

John Drane은 전도를 막는 교회 안의 요소를 아래와 같이 세 가지로 지적했다.땅을 딛지 않고 사는 그리스도인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인은 종종자기들과 너무 다른 세계를 살고 있거나, 비현실적으로 사는 사람들로 비친다. 교회에 나가면 나도 저런 사람 될까 겁나서 못 가겠다는 불신자가 의외로 많다. 신자가 불신자와 다른 것은 당연지사이나, 무엇에 달라야 할지 모르고 무조건 달라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뜻을 좇으므로 다르게 사는 모습이 아니라, 상식조차 내본위로 무시하고 깨며 사는 모습을 Christian Lifestyle이라 우겨선 안 된다. 매사에 경전의 문구를 읊조리며 한 번 시작했다하면 끝낼 줄 모르는 긴 말, 그 말을 멍청하게 듣고 있는 모습이 불신자들의 눈에는 이상하게 비친다. 정신적으로 한참 미숙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백치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불신자들은 의아해한다. 진리를 장엄하게 선포하지 못하고, 또 그런 판에 박힌 말을 아무반응 없이 듣고만 있는 모습, 이것이 교회라면 누가 교회에 나오겠는가? 세상은 적어도 사람들을 지적으로 정서적으로 흥분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는데!
 
개인주의적인 신앙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사적인, 간섭 할 수 없는 개인적인 취향’문제로생각하고 있다. ‘My faith is my own business!' 신앙이 사생활이라면 누가 누구에게 예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스도인 자신이 신앙을 개인적인 취향, 건드릴 수 없는 사적 영역으로 남겨 놓으면서 다른 사람의 신앙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의 세 가지 부정적인 인상을 씻어버리지 못하는 한 전도는 한참 어려운 일로 여전히 남는다. 전도의 동력은 사랑이었다
 
놀랍게도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전도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전도하는 일에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은사를 보인다는 점을 인정했지만(엡4:11), 초대교회는 전도를 전문가에게 맡기지 않았다. 초대교회 사람들이 우리와 다른 가장 중요한 점은, 좋은 소식을나누는 일,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였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별로 의식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를 따르라고 권했다.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한 이유의 하나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지상명령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아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이 사람들은 이 명령이 내수용(교회용)이고 생각하지않았다. 이들은 이 명령을 받은 대로 세상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시작했고, 이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연스레‘좋은 소식’을 듣고 교회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전도를 행사,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늘 효율성을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전도의 핵심은 깨끗한 영성이요 단정한 생활이었다.
 
비관주의 vs. 영웅주의
전도는 교회의 수퍼맨 수퍼우먼들이 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주시기 위해 스스로‘아기’가 되는 약자의 모험을 하셨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엄청난 일을 내가 어떻게!’하는 비관주의에 빠지지도 말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온 세상을 구하자!’며 붕붕 뜨는 영웅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전도 하기 앞서 점검해야 할 점은, ‘하나님이 전도하신다.’는 믿음을 붙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위해 친히 일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돕는 위치에 있다. 이 위치를 바꾸면, 마차가 말을 끌고 가는 격이 된다.

예수님처럼 열심히 전도한 분이 없을 것이다. 예수님의 열심은 어디서 나왔는가?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그분의 열심은 극성이 아니라,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의 소명에서 나왔다. 이 점에서 우리도 몇 가지를 배워야 한다.
 
1. 죄의 개념을 넓혀라. 모든 인간은 죄인이요 이점을 지적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다. 죄는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온 우주적인 것이다. 죄는 회개해야 할 것이며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구출 받아야 할 실체이다. 따라서복음은‘당신은 죄인이다. 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선언하는 것뿐 아니라, ‘죄에서 나올 길이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어야 한다.
 
2.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라. 예수님은 많은 세리, 창기, 죄인과 어울리시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다. 이 때 예수님은 죄인들이 불편해할 장소나 분위기를 택하지 않으셨다. 단란주점, 골프장, 노래방이 편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아량이 필요하다. 전도는 사람들의 삶에서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기술이다.
 
3. 점진적인 성격을 이해하라. ‘나를 따라라.’이것이 예수님 전도의 핵심이었다. 선수과목을 이수하고 오라, 조직에 속하라 하고 요구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평생의 과정이다. 번갯불에 콩 볶는 듯한 보챔과 조바심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불신자들의 구도를 생애 전체를 놓고 떠나는 새로운 삶의 여행으로 봐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4. 약점으로 전도하라. 신앙의 영웅이 돼야 전도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영웅적인 전도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오히려 전도를 막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스도인에게 전할 좋은 소식이 주어진 것은,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우리나 불신자가 똑같은 인생 고민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차이는? 우리의 고민과 고통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전도할 수 있다.

김성웅 전도사 (남가주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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