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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14:43

제 10과 안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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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장 15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출애굽기 20장 8~11절).  
  예로부터 한국에도 7일씩을 세는 관습이 있어 왔습니다. 가령, 무슨 정성을 드리거나 신을 위하여 구별할 때 초칠일이니 삼칠일이니 칠칠일이니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일(週日) 제도는 최근 개화를 하면서 서양 풍습을 수입해 들인 것입니다. 더구나 일요일에 쉬는 규례는 우리나라가 양력을 사용하기로 채택하면서부터 생긴 것인데, 그리스도교가 한국에 수입되어 일요일을 예배일로 지키면서 더욱 일반화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은 일요일이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날로서 일반이 편안히 쉬고 즐겁게 지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일 제도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유래를 잘 아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중에서도 어떤 교파는 일요일을 지키고 어떤 교파는 토요일을 지키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주일 제도와 안식일의 기원에 대하여 연구해 보기로 합시다.
 

주일 제도와 안식일의 기원
  주일 제도는 역(曆)의 일부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천체의 운행 즉 해나 달의 운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양력이나 음력은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서 만든 것이요, 각 절기들도 지구가 해를 한 바퀴 도는 기간 즉 1년을 24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간(週間)이라는 7일 제도는 천체의 운행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이것이 역(曆)의 일부로 뛰어든 것은 기이한 일입니다. 대영백과사전의 기록에 의하면 “주일은 7일의 주기를 가진 것으로, 천체의 운행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 …이 제도는 동양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태고 적부터 채용하여 왔다. 7일은 태양력이나 태음력의 1년 혹은 1년의 몇 분의 일이 되는 수가 아니기 때문에 모세의 기록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 유래를 확실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기록이라 함은 구약 성경 서두에 나오는 천지 창조에 관한 기록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주일 제도와 제7일에 쉬는 것을 제정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장에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장 1~3절)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애굽기 20장 8~11절)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안식일은 인류 역사의 시초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창조의 기념일입니다. 하나님이 이 날을 다른 날과 구별해서 신성한 날로 삼고 인류에게 명하사 이 날을 기억하고 이 날에 휴식하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기억하라고 하신 것을 보면, 사람들이 안식일을 잊어버리고 그 날을 속되게 지낼 것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안식일을 왜 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일곱째 되는 날은 쉬도록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피곤을 회복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피로를 회복시켜야 할 필요가 있지만, 당시에는 아직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은 때이므로, 인류가 농사를 지어도 피로를 느끼지 않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완전한 사람으로 창조되기는 했으나 역시 피조물의 하나였으므로, 자녀가 그 부모를 의뢰하듯이 하나님을 의뢰해야만 했었습니다. 자신들이 피조물인 것을 깨닫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을 의뢰함으로써 두 사람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은 저들이 일주일 중 하루는 자기들의 일상 업무에서 떠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과 지혜를 명상하고 하나님께 충성하고 감사하는 생각을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 안식일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밀접한 관련을 맺는 날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에스겔 20장 20절).  
  이 말씀은, 안식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거룩히 구별해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표징이 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안식일을 지킴으로 우리는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깊은 의미가 있으므로 안식일은 태초로부터 인간에게 축복의 날이 된 것입니다. 더구나 복잡하고 요란한 세상에서 일주일의 하루를 분주한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을 경배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우리 메마른 심령을 얼마나 풍부하게 하며 만족스럽게 하는가! 그리고 안식일마다 온 가족이 예배당에 나가고 야외에도 나가 하나님을 명상하며 단란하게 지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모습인가! 인류가 태초로부터 이 훌륭한 습관을 줄곧 가지고 내려왔다면 회의론자나 무신론자는 한 사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온갖 비참한 사건들이 하나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
  아담 이후로, 안식일은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들로 말미암아 거룩히 구별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조차도 안식일을 잊어버린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애굽 나라에서 노예가 되어 학대를 받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아는 지식과 당신의 계명을 후세에 전하시려고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의 그 악한 환경에서 전부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들로 40년 동안 시내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재교육을 받게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6장의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들을 먹여 살리시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만나’라는 양식을 내려주셨는데, 이 일로써 매 주일 세 가지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첫째는, 6 일간은 만나가 매일 내려도 제7일에는 내리지 않은 것이요, 둘째는, 처음 닷새 동안 거둔 만나는 이튿날까지 두면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난 것이요, 셋째는, 제6일에는 갑절의 만나를 거두어 이튿날 안식일까지 두어도 냄새가 나지 않고 벌레도 생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제7일에 만나를 거두러 나갔다가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출애굽기 16장 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만나를 내려주시려 할 때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애굽기 16장 4절)고 하셨으니, 안식일은 곧 하나님의 백성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시금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안식일에 관하여 여러 시대 동안에 종종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중에 가장 심각했던 것은, 저들이 바벨론 왕에게 멸망당하기 직전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미암아 이른 말씀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만일 삼가 나를 청종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며 안식일을 거룩히 하여 아무 일이든지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위에 앉는 왕들과 방백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성문으로 들어오되 그들과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거민들이 함께 그리할 것이요 이 성은 영영히 있을 것이며…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거룩케 아니하여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면 내가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예레미야 17장 24, 25, 27절).
  이스라엘 민족이 안식일을 성별하여 지키고 지키지 않는 것은 당시에 있어서는 나라의 흥망을 결정하는 시금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그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그 후 70 년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서야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에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내가 유다 모든 귀인을 꾸짖어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이제 너희가 오히려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함이 더욱 심하게 하는도다”(느헤미야 13장 15, 17, 18절).  
  느헤미야는 이와 같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재난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식일마다 예루살렘 성문을 닫고 파수꾼을 세워, 짐을 지고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유대인의 랍비들은 안식일을 더욱 잘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까다로운 세칙들을 만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에는 옷감 한 조각, 바늘 한 개라도 가지고 다녀서는 안 되며, 주머니에 손수건 한 장도 넣고 다니지 못한다는 등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안식일을 한갓 형식으로만 지키게 되어, 이 날이 즐겁고 유쾌한 날이 되지 못하고 매우 괴롭고 거북하고 부자유한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약시대의 안식일 
  그러므로 신약 시대에 와서 예수께서는 이 안식일에 관한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몸소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는 안식일에 규례를 따라 회당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리셨고, 당시 사람들의 안식일에 관한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시려고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마가복음 2장 27, 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들에게는 사람이 만든 39개조의 규칙과 기타 세칙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큰 속박이요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친히 안식일을 제정하신 분이시며, 그분이야말로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그분이 지키신 제7일이야말로 참 안식일이며, 그분이 지키신 방법이야말로 정당한 방법입니다.  
  한번은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고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물으니,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태복음 12장 11, 12절)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등한히 해도 무방하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또 그분은 40년 후에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대비해서 이러한 권면을 주셨습니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태복음 24장 20절).
  이것을 보면, 예수께서 안식일 지키는 것을 얼마나 중요시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에 안식일이 폐지되거나 변경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교훈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여신도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그 시체를 어디 두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예비하고는 안식일이 되므로 계명을 좇아 쉬었다고 하였습니다(누가복음 23장 56절 참고).  
  또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에 전한 위대한 사도 바울에 대해서도 기록하기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사도행전 17장 2절),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일년 육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니라”(사도행전 18장 4, 11절)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여행하는 곳곳에서 규칙적으로 안식일을 지켰으며, 사람들을 가르치기에 힘썼습니다.  
  그러므로 참 안식일은 예수와 그 제자들이 지키고 사도 바울이 지킨 제7일, 즉 유대인들도 오늘날까지 계속 지켜 내려오는 바로 그 날 토요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일반 기독교가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것은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해서 다음 제4권 11과에서 자세히 연구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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